딸 이야기...about Christina..

'엄마의 쪽지 편지'. -딸의 열네 번째 생일에 붙여...

슈퍼맘빅토리아 2008. 5. 27.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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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X 초등학교 5 학년 5 반 송 서원 -

 

무척 힘들지?

나도 그렇다.

 옆에서 보는 내가 더 힘들지도 모른다.

피곤해 하는, '천방지축', '분기탱천', '엽기발랄'이던

나의 딸을 보며,

너를 대한민국의 2000 년대에 태어나게 한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

 

 차라리 전기도 안 들어오는 이탈리아 산골에서 태어나

좋아하는 스파게티나 실컷 해 먹고,

염소 기르고,

야채밭이나 일구고 살았으면 좋았을 걸....

 

 철마다 풍성한 여러 과일과,  꽃과  향료로

맛있고 특이한 드레싱 만들고,

서로의 새로 개발한 recipe를 자랑하며,

해 떨어지면 잠자리 챙기기 바쁘고...

 

정말 꿈 같은 생활을 꿈꾼다!

하지만 힘내자!

내일이면 더 편한 태양이 떠오를거야.

영어선생님 Ms.Park께 부탁드려서 쬐끔 더 편한 방법을 찾아 보도록 하자.

 

 학교에서 졸지 말고 별 같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공부하다 오렴.

숙제하느라 애썼다.

I love you!

                            2005 년 3 월 4 일 새벽 2 시 19 분.

                           - Your one and the only Mom.

 

*** 이사 준비하느라 방정리를 하던 딸이 슬그머니 제게 내민 원고지 넉 장이었습니다.

      제가 보냈던 쪽지를 원고지에 옮겨서 삼 년도 넘게 보관하고 있었나봐요, 글쎄...

      '엄마, 이 편지 읽고 몰래 울었어영~'라고 덧붙이더군요.

 

       2005 년 봄, 또래들보다 너무 늦게 시작한 영어공부의 구멍을 메우느라

      아이를 엄청시리 잡았나 봅니다.

      어쩌자고 새벽 2 시가 넘도록 숙제를 시켰는지

      지금의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증거로 남아 있는 정확한 시간 표시에 뭐라 변명의 여지가 없네요. (쥐구멍 찾고 있습니다,^^)

      대충 기억을 더듬어 보니

      숙제를 자꾸만 미루는 서원이에게 따끔하게 교훈을 심어주려 마음 먹고 한 일 같기도 하고,

      몇 번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해오라는 영어선생님의 엄명 때문인 것 같기도 하지만...

      어린 것이 두 시 넘도록 영어숙제 하느라 끙끙거리는 모습이 못내 가슴아파

      재워놓고 끄적인 쪽지였습니다.

    

      그후로도 몇 번쯤은 숙제 때문에 제 속을 뒤집어 놓고 난리를 치기도 했지만

     중학생이 된 후 놀라운 속도로 자율적이 되어버린 딸은

     '도대체 내가 왜 그렇게 숙제를 안 해 갔지? 이해가 안 되네,ㅎㅎ' 라고 웃어넘기네요.

     아이들은 믿는 만큼 자란다는데..

     제 믿음이 부족한 탓이었겠지요.

    '무엇이든 억지로 되는 일이 없다'는 만유의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때가 되고 스스로 깨닫게 되면 알아서 하는 것을

     왜 그렇게 아등바등 시키려고 헛되이 애썼는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키가 그리 크냐?'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성격 소탈한 딸은 대답하지요.

    '어렸을 때 너무 많이 놀아서 그래요...ㅋㅋ'

     아이들 어렸을 때는 정말 많이 놀렸습니다.

    '잘 노는 넘이 공부도 잘 한다.'라고 주장하며

    소위 말하는 '조기교육'과는 담을 높이 쌓고

    두 아이들과 고루고루 찾아다니며 잘도 놀았지요.

    아마도 상윤이를 키우면서 '아동심리와 발달'에 대해 조금씩 깨우쳐 가고

    아이가 다니는 치료기관에서

    지나친 조기교육으로 인해 상처받고 위축된 아이들을 많이 보아온 탓도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상윤이 키우기에 너무 버거워

    서원이에게는 인지학습의 기초와 생활습관의 기틀을 제대로 세워줄 힘이 모자랐을 수도 있었겠지요.

    아무튼 서원이는 굴레를 벗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커왔습니다...

    적어도 초등학교 4 학년 말이 되기 까지는,ㅎㅎ

 

     초등학교 4 학년 말이 되면서 주변의 '만들어진 아이들'과 비교를 하게 되고

    심하게 벌어져 있는 격차를 피부로 느끼게 되자

    마음이 급해진 저는 그동안 고수해 왔던 '게임의 법칙'에 과감히 메스를 댔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슴 시린 시행착오를 여러번 겪게 되었지요.

    하지만 또 몇 년 지나고 보니

    역시 '배움'에 대한 진리는 불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에이, 그거!'라고 비웃을 지도 모르는,

    '말을 물 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먹일 수는 없다'라는 수백 번도 더 들은 말...

 

     이러다가도 어느 순간 흔들려 억지로 끌고 갈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서원이가 끌려 오지 않을 것 같네요.^^

    어느새 마음이 훌쩍 자라버린 제 딸아이가 세상에 나온 지 만 14 년 되는 날 아침에

    감회에 겨워 몇 자 적어 봅니다.

    '션양, 생일 축하해, 그리고 끝없이 사랑해!'

   

 

 

 

*   작년 제 생일날, 서원이와 둘이서만 '라 트라비아타'를 보러 '세종문회회관'에 갔습니다.

 

 

 

**   '피에르 루이지 피치'의 연출로 '떼아뜨르 레알 마드리드'의 단원들과 무대를 옮겨 놓은 환상적인 무대였지요.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들과는 차별되어

      화려하면서도 간결한 무대의 구성과 찬란한 의상으로 볼 거리가 풍성한 공연이었습니다.

      첫 무대에 등장하는 백인미녀들의 '상반신 누드'로 한 방 날리고 시작하더군요.

      '비올레타'역의 '이리나 룽구'의 열연과 열창으로 모녀는 전율에 떨었습니다^^.

      그녀의 가늘고 길게 뽑아내는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맴돌고 있답니다.

      서원이가 '라 트라비아타'를 보고 싶다기에 처음에는 조금 망설였습니다.

      '19 세 이상'인 것 같기도 하고, 아이의 모랄에 영향을 줄 것 같기도 했지만

      요즘 TV연속극의 수위에 비하면 대단치 않을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소설을 소설로만 볼 수 있는, 허구와 현실을 혼동하지 않는'

      어미보다 깔끔한 딸내미...였습니다,ㅎ

 

 

 

***  세종문화회관 2 층에서...

 

 

 

 ****   감동에서 벗어나지 못 한 모녀... ^^ 특히 저요!!

 

 

 

 ***** ' 션양'...이라 스스로 부르고 있습니다.

 

 

 

******  서원이가 이렇게 끝이 보이고 불이 밝혀진 길로만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   제 단골 미장원에서 헤어컷을 했습니다, 처음으로..

 

 

 

********   야구시합을 마친 아빠와 초교동창 친구이신 '상도 아저씨'의 가족이 함께 모였습니다.

 

 

                                                           사랑한다, 딸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