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 훈'에 열광한다...그의 눈에 비친 時라는 것..
나는 시를 쓰지 못하고,
시를 쓸 수 있게 되는 마음의 바탕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시적 대상이나 정황이 시행으로 바뀌는 언어의 작동방식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그래서 시행들은 나를 소외시키고, 시인들은 낯설어 보인다.
내가 모든 시를 다 들여다본다 하더라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시행은 겨우 몇 줄이다.
시를 읽을 때,
내 마음은 시행을 이루는 언어와 그 언어 너머의 시적 실체 사이에서 표류한다.
나는 언어를 버리고 시적 실체 쪽으로 건너가려 하지만,
언어는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언어는 버림받는 애인처럼,
징징거리며 끝까지 나를 따라온다.
언어의 징검다리를 딛고 서있을 때, 징검다리의 저편이 보일 듯도 하지만
이 징검다리를 딛지 않고서는 나는 저편으로 건너갈 수 없다.
나에게 간절한 것은 언어가 아니라 징검다리 건너편에 있는 실체이지만,
나는 늘 이 징검다리 위에 있다.
언어를 분석하면 또 다른 언어의 부스러기들은 쏟아져 나올 것이고,
그 부스러기들을 다시 분석하면 또 다른 부스러기들은 쏟아져 나올 것이다.
나는 때때로,
언어의 동어반복의 운명 앞에서 절망하고 전율한다.
그런데 어떤 언어들은 저편의 실체를 향하여 따스하고 편안하게 나를 인도해 준다.
그 언어들은 순하고 명석하다.
그 순한 언어의 징검다리를 딛고 서 있을 때도 나는 그 징검다리를 벗어나려고 안달한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시행을 따라간다.
시집을 읽을 때 내 마음은 페이지 위로 떠올라서,
페이지와 램프 사이를 떠돌다가, 램프 너머로 흘러간다.
마음이 떠난 페이지 위에 언어는 여전히 시행으로 남아 있다.
나는 다시 페이지 위의 언어를 들여다본다.
이 꼬불꼬불한 글자들은 대체 무엇인가.
- '바다의 기별' 김 훈 에세이 p62~63, '시간의 무늬' 중에서 일부를 가져왔습니다. -
<< 내가 그를 만난지 4 년이 되었을 따름이다.
그는 '자전거 여행'의 페이지를 뛰어넘어
내 안에 숨겨진 본질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 왔다.
그의 바퀴에 편승해 내 영혼은 아름다운 산하를 떠돌았고
그의 소설은 곧 나의 역사가 되어 시공을 주름잡았다.
그와 함께 한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그는 글이란 첨예한 도구로 나를 우비고 파헤쳐
스스로 존재의 유무조차 깨닫지 못 하던 '쓰기를 향한 강렬한 욕구'을 일깨웠다.
차라리 묻혀있음이 축복이었다.
한번 드러난 욕구는 집착이 되어 끈질기게 따라붙었고,
끝내 닿지 못 할 '훌륭한 글'이란 신기루는 비루한 나를 수없이 절망시켰다.
아직도 나는 꿈을 꾼다.
그의 세계를 천착하여 그 깊은 핵으로 침투하기를...
그의 핵을 이루는 질료로 자은 씨실과 날실로
나만의 아름다운 문장들을 낳기를..
내 안에 잠자고 있는 고치 속의 애벌레가
오직 나만이 배합할 수 있는 독특한 색의 날개를 입은 현란한 나비로 깨어나기를...
<< 시간의 무늬>>
<<'바다의 기별', 그리고 '내가 읽은 책과 세상' by '김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