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를 위하여..For Victoria...

빗속을 달려 가슴을 풀어 놓다...헤이리,090420...

슈퍼맘빅토리아 2009. 4. 24. 01:54

 

 

 

장애인의 날...

아침부터 가슴에 헝클어진 실뭉치가 굴러다닌다.

봄비치고는 꽤 많은 양의 비가 내리는 곡우(穀雨)날..

옛날, 오늘부터 농사를 시작했다지..

이 비와 더불어 나는 무슨 농사를 지어야 하나..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의논할 대상이 아무도 없는 그녀가 나를 의지한다.

몹시 도와주고 싶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들어주는 귀, 위로해주는 입술..

 

그녀를 옆에 태우고 자유로를 달린다.

차바퀴는 두 줄로 분수처럼 흩어 물의 가르마를 탄다.

시야가 먹먹하다.그러나, 속도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헤이리 입구에서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간혹 한 두 쌍의 연인들이 눈에 띌 뿐..평일 낮의 그곳은 한적하다.

나를 보자마자 허기가 치밀었다 한다..

그 말은 들은 내게도 허기가 밀려온다.

사흘 이상을 물만 먹은 그녀는 어린 길고양이처럼 턱이 뾰족해져 있었다.

따뜻한 음식을 나누고 싶었다.

평일 낮의 헤이리에는 푸근하게 우리의 허기를 감싸줄 먹거리를 찾을 수 없었다.

 

빗줄기는 잦아지는 듯 머뭇거리다가  더욱 굵어진다.

허 향림 갤러리에 도착했다.

그곳의 커다란 옹기들을 보며 따뜻한 된장찌개를 떠올렸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곳에도 우리가 찾는 콤콤하고 뜨거운 위안은 없었다.

1000원..입장료를 내고 사진 촬영이 금지된 갤러리 내부로 들어간다.

푸른 머리의 여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조각들의 의미를 짐작해 본다.

 

 

 

 밖으로 나간다..

빗방울 사이로 더욱 투명해진 시야에 푸르름이 차오른다.

그녀와 나는 정작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무계단을 올라가 젖은 첼로를 연주하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어떠한 날씨에도 충실한 그녀..

 

 

 

 

그녀는 어떤 곡을 연주하고 있을까...

 

 

 

 뜬금없는 고양이의 등장..

그는 세상과 눈을 맞추고 싶어하지 않는다.

 

 

 

크롬과 스틸과 시멘트로 만든 건물 안팎에는 옹기들이 가득하다.

그녀와 나는 아주 커다란 옹기들 한 개쯤은 집에 가져가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본디 질그릇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어렸을 때...귀앓이를 하는 내게

어머니는 작은 항아리에 펄펄 끓는 물을 담고 거즈로 덮은 후

내 귀를 갖다대라 하셨다.

그때.. 한참을 기다리면 뜨거운 기운이 귓바퀴를 감돌고 들어가

거짓말처럼 아픔이 가셨다.

시린 그녀와 나의 가슴을 따끈하게 데워 아픔을 가시게 할 뜨거운 물과

그것을 담을 옹기를 갖고 싶은 것일까..

 

 

 

 

이층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자마자 오른쪽에 그들이 있었다..

나는 왜 그들에게서 메두사를 보았을까..

불신과 질시와 질타를 머리에 이고 노려보는 그들..

눈동자가 각인되어 있지않은 허연 시선이 두려웠다.

 

 

 그녀와 나는 헤이리를 황급히 벗어났다.

따뜻한 된장찌개를 찾았다..

허기를 채우며 입을 연 그녀를 앞에 두고

나는...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자신을 위로하고 달래듯

열심히 고개를 주억거리고 추임새를 넣으며... 가슴을 활짝 열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시림은 아주 많이 가셔있었다.

나는 이 비로 내가 키울 것들에 대해 오랜동안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