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를 위하여..For Victoria...

'풍경'...이 재무...JOOFE..그리고..나..

슈퍼맘빅토리아 2009. 5. 2. 16:46

  

 

 

 

 

 

 

 

 

 

 

 

 

 

 

 

 

 

 

 

 

 

 

 

 

                          북악산과 인왕산이 만나는 곳..'백사실 계곡'입니다.

                          지난 4 월 19 일 '산상예배'를 드리기 위해 걸어올라가면서 남긴 사진들입니다.

 

 

 

 

 

 

 

                      풍    경 

                                            - 이 재무

 

 흐르는 물에 상추잎 씻듯 시간의 상처

씻어주는 것들, 풍경 속에 약손이 있다

우수 경칩 지나 몸 푼 강물, 초롱초롱

눈 뜬 초록별 그리고 지상으로 기어올라와

부신 햇살 속으로 얼굴 디밀고는

어리둥절한 지렁이의 가는 허리,

꼭 그만큼씩만 꿈틀거리는 봄날의 오솔길

등 속이 피워내는 적막의 부드럽고 따뜻한

혀가 쩍, 벌어진 진애의 살(肉)을 핥는다

풍경 속으로 풍경되어 걸어가면

순간의 열락으로 몸은 한지처럼 얇고 투명해진다

풍경은 붕대다

늙고 지친 생을 감고 부옇게 떠오르는 상처난

생활의 소음이며 거품 천천히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언젠가 새 살 돋아 가려워진 생은

풍경의 울타리를 벗어나 스스로 걸어나올 것이다

 

                                                                 (이 재무 시인)

 

 

정지되어 있는 풍경은 없다.

늘 꿈틀거리며 늘 변화한다.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는 편이며,

그래서 세상은, 우주는 늘 무질서해지고 우리의 의식도 우리의 몸도 무질서해진다.

그것이 신이 우주를 만들때 훅 하고 불어넣은 생명이다.

삶의 리비도가 풍경을 바꾸고 있다.  

 

                                        ( JOOFE HOUSE 주인장의 파란 글)

 

상처가 번성할 때는..
풍경이 붕대라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 하고
그저 숲만 그리워했습니다.
노르웨이 빙하가 녹아 내리는 강 양안의 아득히 높은 침엽수림..
그 숲의 품에 들어가 보이지도 않을 하늘을 올려다 보면
치유의 완성이리라는 막연한 기대감만 붙들고 있었지요.
결국..실현 가능성 없는 꿈을 품음이 곧 절망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어찌어찌...풍경보다 더 든든한 '시간'이란 붕대로 처매어 지혈되고 새살이 돋아
더이상 노르웨이를 그리워하지 않게 되었고..
한참 지나 그리움조차 잊을 때쯤
정선의 숲을 찾았습니다..뒤통수를 치고가는 깨달음..
'풍경이 붕대다'...
그토록 애타게 찾던 푸른 숲이 풍경이고 붕대였다는 것을..

인류의 시원은 바다가 아니라 숲으로 부터일지도 모르지요..
숲에로의 회귀본능이 이렇게 큰 걸 보면..ㅎ

 

                                                               (슈퍼맘의 빨간 글)

 

 

 

      저도 2 년 전 이 시를 처음 봤을 때...
뭐가 조금 와닿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난감했습니다..
게다가 JOOFE님의 파란 글은 더욱 난해하고..
일단..접수만 했더랬지요.

'산상예배'를 드리러 올라간 '백사실 계곡'이 하도 아름다워
사진을 올리려다가 불현듯 '풍경'..이 시가 떠올랐습니다.
문득..정선의 숲에서 느꼈던 감동이 되살아나더군요..

건강하시지만 연로하신 부모님과,자폐인인 아들과 더불어 살면서
얼마나 커다란 상처를 입고 왔는지..대충 짐작은 하실 겁니다.
더구나 이 독특한 감성과 사고를 붙들고 남몰래 지키면서
제 자신이 키운 상처의 크기도 만만치 않았지요.
너무나 힘들 때마다 노르웨이의 숲을 떠올렸습니다.
그곳에 가면 제 상처가 치유될 것 같은 강한 확신과 함께..
돌이켜 보면...당시의 제가 노르웨이의 숲을 찾아가는 일은 불가능했습니다.
즉..'내 상처는 치유불가능이다..이곳에서 치유시킬 생각을 버리자..'라는 절망감에서
갈 수도 없는 곳을 무의식적으로 치유장소로 택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제가 숨 쉴 틈을 찾아서 어딘가로 떠난다는 사실 자체가 불가능했거든요..
단 한 나절도 비우기 힘든 시기였으니까요..

작년 11 월...지난 5 년간의 '자기치유와 회복'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단계로
온집안을 깜짝 놀라게 만들면서 '정선'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아들조차 두고 떠나고 싶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데리고 가기로 결정했지요.
일정도 정하지 않고 무조건 '정선'이라 결정하고
지도와 시동생에게서 빌린 '내비게이션'만 의지한 채 길을 떠났습니다.
정선으로 가는 길 내내 제가 맛 본 '자유함'..
그리고 정선 땅 이곳저곳의 숲에서 올려다 본 동그란 하늘 구멍에서
저는 그토록 제가 '노르웨이의 숲'을 그리워했던 이유를 찾아냈습니다.
'숲' 자체가 제게 치유이자 위안이었다는 사실을요..
찾고자 하면 사방에 '숲'이 있는데 너무 지쳐 찾지를 못 하고 있었던 겁니다.
즉...도와달라거나 나눠갖자고 부탁했으면 들어줄 사람이 있었음에도
제가 손을 뻗지 못 했다는 사실을 한참 늦게 깨달았지요.

'풍경'보다 더한 붕대인 '시간'...숲을 찾지도 못 한채 시간이 흐르며
아이도, 부모님도 많이 편안해져갔습니다..'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꼭 들어맞더군요.
세월 따라 서서히 상처가 아물고 새 살이 돋아날 즈음에
저 역시 '숲'을 찾아 떠날 용기가 생겼던 겁니다.

(시간이 흐르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도 적응이 되고 아이도 자란다는 사실을 저만 몰랐난 봅니다..ㅎ)


어린 시절부터 저는 숲을 그리워하고 사랑했습니다.
이웃 할머니 한 분이 '가시나 저거는 산도깨비아이가..ㅎㅎ' 하실 정도로
틈만 나면 동네에서 제법 떨어져 있는 큰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산 냄새, 숲 냄새가 얼마나 좋던지..
켜켜이 쌓인 묵은 낙엽들을 들추면 따라 올라오던 알싸한 먼지 같기도 한 삭은 냄새..
초등학교 6 학년 졸업할 때까지 제' 산헤매기'는 계속되었지요.
고등학교 2 학년 말, 본격적인 입시준비를 앞두고도
새벽산에 올랐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 다아윈의 '진화설'을 접했을 때,
인간의 시원이 징그러운 물고기로 부터 비롯되었다는 이야기에 몸서리치며,
차라리 제게 완전한 신비의 모태인 '숲'에서 자란 어느 짐승으로부터 진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믿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시원이 바다가 아니라 숲으로부터 일지도 모른다고 썼구요..
순전히 개인적 발상입니다..하하

** 별로 특별한 것도 없는 내용을 비틀어 어렵게 만들어 놓고..설명 붙이며 혼자 웃었습니다.
       돌이켜 보면..저란 사람은 항상 쉽게 쉽게 살아오지 못 한 것 같다는 자각에서요.. 호호 

                                                       ( 슈퍼맘의 초록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