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겸재 정선 서거 250주년전(중앙박물관)
겸재 정선 서거(1676~ 1759) 250주년 기념전을 중앙박물관에 가 보았다.
정선의 그림은 세번째로 본다. 그러나 그림에 문외한이라 항상 새롭다.
오늘은 마침 자세한 해설을 겸해 감상할 수 있었고,
더구나 정선의 기록영화를 1시간 보고 도록도 사서 보았다.
조선의 화성(畵聖)이라고 일컫는 직업화가가 아닌 문인화가로 진경산수화라는
조선의 독자적이고 독창적 화법을 완성한 그의 공은 큰 평가를 받고 있다. 종전에는 중국의
화풍을 모방하는 수준이었지만 실경(實景)산수는 단순한 산수의 그림이지만 진경산수(眞景山水)는 산수의 내면까지 들어가 재창조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82세까지 살며 60년간을 그렸다.
그는 시서화(詩書畵)에 능했고, 문사철(文史哲)에도 밝은 선비로서 격조높은 삶을 살았다.
그림 속에서나마 조선 선비들의 삶을 보며 고고하고 품격 높은 삶을 그리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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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문화는17~18세기에 절정을 이룬다. 그림에선 중국풍을 모방하던 데서 벗어나 우리의 산하(山河)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진경산수가 등장했다. 이를 대표하는 화가가 겸재다. 그는 산세와 계곡의 형태를 직접 사생(寫生)한 후 그 아름다움을 독자적 형식으로 표현했다. 우거진 수풀은 묵법(墨法) 위주로,절벽은 선묘법(線描法)으로 그려 음양의 조화를 찾는 등 주역의 원리를 도입하기도 했다.
겸재가 대성한 것은 재능도 재능이지만 끊임없는 노력 덕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금강산과 관동의 명승,서울 근교와 남한강 등을 찾아다니며 그리고 또 그렸다. 조영석은 "겸재가 전국을 여행하고 사생하면서 사용한 붓을 묻으면 무덤을 이룬다"고 말했을 정도다. 말년에는 안경을 두 개씩 겹쳐 쓰고 붓을 잡았다는 얘기도 전한다.
작품 값도 비쌌다. 18세기 실학자 황윤석은 ' 이재난고'라는 일기에서 정선의 그림 값이 3000전이라고 소개했다. 당시 쌀 한 되가 1전4푼이었다니 만만찮은 가격이다. 그의 그림은 중국에서도 비싼 값에 팔려 중국 역관들이 귀국할 때 겸재 집 앞에 줄을 서서 그림을 사갔다고 한다.
그림 링크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108467
겸재 정선이 그림을 팔아 모은 재산으로 지금의 인왕산 아래 옥인동에 집을 사서 "인곡유거"라 이름 지었다.
인왕산 바위가 오른편에 보이고 겸재가 한적하게 사랑방에 앉아 있다.
독서 여가
木覓朝暾(목멱조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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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安煙雨(장안연우)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날, 북악산 기슭에서 내려다 보며 그린 그림.
장안은 안개에 가려 안 보이고 남산이 우뚝 솟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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仁王霽色(인왕제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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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비로봉도 |
북원수 회도첩
겸재정선기념관
양천구 가양동 소재.
5호선 발산역 3번 출구에서 6번 마을버스를 타고
가면 기념관 입구까지 갈 수 있다
겸재 선생에 대해 귀중한 글을 올려 주신 녹암님께 감사드립니다..
비로봉도, 인왕운색,인왕재색,인곡유거, 장안연우 등
정선 선생의 멋진 그림에 해설가지 자상하게 곁들여 주심에 또한 감사...
이곳에 가양동 소재의 겸재 정선 기념관의 홈페이지 주소를 더해 붙입니다.
겸재정선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