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이야기..about Daniel

'폭력'인가,가혹한 '장난'인가.....요즘 아이들, 너무 합니다..

슈퍼맘빅토리아 2009. 11. 3. 03:42

 10월 21일 아침...

 

전날 받은 한 통의 문자 메세지로 무척이나 푸근한 마음을 안고 아들의 학교로 향했다.

 

1,2,3 학년 특수학급 학생들과  학부모들, 그리고 몇 분의 관심있는 선생님들이 모여서

'아침예배'를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새로운 움직임에 감사하며 집을 나섰다.

 

 

 

 

 

예배 드리는 모습...뒷모습을 보아선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할 수 없다.

 

 

목사님은 영화 '블랙'의 졸업식 부분을 보여주시며

부단한 노력으로 장애를 딛고 홀로서기를 한 주인공처럼

우리 친구들 역시 열심히 노력하라는 내용의 설교를 하셨다.

 

 

 

이제 겨우 두 번째 학기에 접어들었지만,

고등학교 생활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보낸 지난 9 년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인상을 굳히게 된다.

 교과과정 전체와 관심사가 온통 대학입시에만 집중되어 있는 교육현실에서

장애와 더불어 살아가는 특수학급 아이들의 설 자리는 어느 곳에도 없었다.

비록 장애와 비장애 학생들의 온전한 통합교육은 힘들다 할 지라도

원반에서의 물리적 통합과 특수학급에서의 개별화 교육의 병행이 어느 정도 가능한

초, 중등 교육과 굳이 비교하자면,

특수학급이 있는 고등학교는 일반 고교 안에 있는 초라하고 고립된 '하꼬방 특수학교'에 지나지 않는다고나 할까...

 

내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처럼 특수학급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켜,

학생들과 학부모와 특수학급 선생님,그리고 원적학급 선생님이 한마음이 되어

행복한 학급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말했을 때...

 고등학교를 먼저 경험해 본 많은 엄마들이 한숨을 쉬며 

'고등학교는 달라...꿈 깨!!'라고 말했다. 

 

이미 학기 초에 원적학급에서 몇몇 아이들의 도에 지나친 장난과 놀림으로 한차례 풍파를 거치며

 아들 또한 가혹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 체념한 모습을 보여 마음이 많이 아팠다.

가해한 아이들을 타이르고, 약간의 뇌물(그래 봤자 반아이들에게 간식을 제공한 것일 뿐..)도 쓰고,

반 전체 아이들에게 호소도 해보고..특수학급 선생님들께서도 부단히 애를 쓰셨지만...

원반 담임 선생님께서 도우미 친구를 붙여주셔서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더이상 원적학급에서 교우관계를 통하여 자폐인 아들에게 사회성을 키우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듯 여겨졌다..

 

거의 폭력에 가까운 비장애 급우들의 놀이(!!)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아들...

자신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처우에 방어능력이 전혀 없는 아들..

고민 끝에 원적학급에서 받는 수업을 대폭 줄이기로 했다.

그리고 여름 방학때부터 시작하려고 계획했던 요리수업을 두 달 먼저 등록해

화요일에는 등교하는 대신 요리학원에서 수업을 대신할 수 있도록 학교 측의 허락을 얻어냈다.

여름방학이 될 때까지 그다지 큰 어려움이 없이 지내는 듯 보였다.

 

방학이 지나고 추석 무렵, 아들은 간간이 집에서 지나치게 흥분된 모습을 보이곤 했다.

사춘기라 그렇겠지 하면서도 뭔가 한 구석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

상윤이에게 기분 상하지 않도록 이리저리 유도심문도 해봤지만

화를 벌컥내며 아무 일도 없다는 아들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추석 연휴 전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의 머리가 이상하게 그을려 있는 듯하여

물어봤지만 그런 일 없었다고 딱 잡아뗐다.

'머리카락이 엉켜 자신이 당겨 헝크러져서 그렇다'는 말에 반신반의하면서 지나갔다.

 

 

자존심이 유난히 강한 아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절대

먼저 얘기하지 않았다.

'일러주면 나쁜 것 '이라며 절대 입을 열지 않았고 상황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그러니 주변에서 나나 선생님께 말을 해주지 않아서 모르고 넘어간 폭행의 기억이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다.

 

 

 

 

특수학급 연합예배를 드린 바로 그날 오후..

방과 후에 상윤이를 미장원에 데려가기로 약속했기에 동네 어귀에서 만나기로 했다.

버스에서 내려 약속장소로 걸어오는 아들의 머리가 희한했다.

가르마 왼쪽부분이 투구처럼 치솟아서 뭉쳐 있었다. 

놀라서 자세히 들여다 보니 윗 사진 처럼 여러군데가 그을려 있었다.

화를 내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아들을 달래고 설득하여 진상을 들어보니

점심시간에 급식을 받기 위해 서있는데 반친구들중 **.%%.$$,## 라는 애들이

라이터로 수십 번 그을렸다 한다.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자신의 머리가 엉켜서 자꾸 잡아당겼더니 계속 그러면 라이터 불로 지질 거라 했단다.

한 번 더 당기니까 머리를 숙이라 하더니 **가 오른 쪽 바지 주머니에서 주황색 라이터를 꺼내서 불로 그을렸단다..

일단 사진을 찍어서 증거를 남겼다.

 

특수학급 담임선생님께 연락하니 학교에 계신다고 오라 하셨다.

누가 보든지 불에 그을린 것이 확실했고 원반 담임이 퇴근 후시라 옆반 담임께도 머리를 보여드리고 확인을 받았다.

'기가 차다' 하시면서 진술서를 소상하게 쓰라 하셔서 상윤이가 자필로 진술서를 썼다.

 너는 왜 머리를 대고 가만 있었냐고 물었더니

'원래..그렇게 하는 거 잖아요..'라고 대답하는 아들 앞에서 특수학급 담임선생님과 나는 할 말을 잊고 눈뿌리만 아파왔다.

그가 세상을 마주 하는 방법으로 터득한 것이 '저항'도 아니고 '방어'도 아닌, '체념'이었을까...

 

일단 다음날 등교한 후에 처리를 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새도록 뒤척이는 내 눈 앞에는 라이터불로 머리를 지짐 당하며 고개를 숙인 아들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가뜩이나 불안이 많은 아이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요리를 배우느라 가스렌지 켜는 것을 배우려 얼마나 오래토록 연습을 했으며

가스불 켜는것도 이제 겨우 안심을 할 만큼 불을 무서워 하는데....

 

그들이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

 

22일 목요일... 11시 반쯤 학교로 가서  원적학급선생님을 만났다.

아침부터 문제의 4 명을 불러 조사를 하고 실토를 하라 했더니 절대로 그런 일 한 적 없었다고 부인한단다.

그들 중 주범인 아이는 1 학기 때도 상윤이에게 몹쓸 장난을 하고 학대를 했던 학생이다.

아무리 타이르고  다그쳐도 안 했다고 한단다.

그리고 앞뒷 반 학생들과 상윤이의 급우들에게 다 물어 봐도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었다 한다.

결국 증인도 없고 범인도 없이 증거만 남아있는 셈이다.

물론 상윤이의 증언을  100% 다 믿는 것 또한 아니다..

하지만  상윤이가 자신이 말한 정도의 스토리를 꾸며냈다고 치기에는

이야기의 얼개가 너무 매끈하다고 여겨진다.

상윤이를 키우면서 이미 수많은 미스터리를 겪었는데,

결국..또 하나가 추가되었다..

 

마침내...결론을 내렸다.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그 아이들을 처벌할 수 없는 일이라 직접적인 징계는 할 수 없지만,

담임께서 따끔하게 경고를 하셨다고 한다.

'앞으로 전교생 가운데 또 친구들에게 가혹행위를 하는 아이가 생기면 즉시 경찰 소관으로 넘기겠다'고

향후 보름 안에 전교생 대상으로 조회 시 방송을 해주시기로 학교측과 합의가 되었다.

 

 

사실상 비장애 학생들과 함께 받는 수업이 상윤이에게 더이상 유의미한 것도 아니었다.

만약  누군가가 '케냐'의 유아원생 정도의 언어구사력을 갖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람을 '케냐' '나이로비' 국립대학의 강의실에 앉혀 수업을 듣게 한다면 어느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까..

상윤이는  그 사람과 거의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과 같았다.

이제 겨우 큰 문제 없이 일상에서의 소통이 가능해진 아들에게

이차함수와 루트의 개념과 활용이 과연 얼마만큼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어차피 학습에서 뭔가 얻을 기대에서 원적학급으로 보낸 것은 절대 아니다.

이미 초등학교 3 학년 1학기를 지내고 난 후, 나는 교과 공부에 대한 욕심을 완전히 버릴 수 있었다.

일상 생활에서 꼭 필요한 학습, 즉 한글 읽고 쓰기, 기초 사칙 연산의 이해와 활용, 기초 한자와 영어 등으로

아들의 학습 내용을 채웠다.

나머지 상식 범주의 지식들은 가능하면  실생활에서 습득하도록 체험을 시켰다.

아들을 원적학급에 물리적으로 통합시키는 목적은 오로지 '사회성' 때문이었다.

또래 집단의 문화를 배우고, 언어를 배우고, 질서를 익히는 것..그것만이 목표였다.

그러니, 그 목표를 상실한다면 더이상 통합교육을 시킬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아들의 안전 때문에 더이상 무방비 상태로 아이를 원적학급에 놔둘 수 없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겨울방학이 될 때까지  상윤이를 원적학급으로 올려보내지 않기로 했다.

2 학년이 되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다행히 그들이 한 살 더 먹어 조금 이성적이 되고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법을 아는 아이들이라면 

원적학급 통합시간을 고려해 보겠지만,

현재 상황으로 봐서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날이 밝으면 학교에 확인을 해 볼 것이다.

내 아이뿐 아니라 특수학급의 다른 구성원에게  같은 일이 생겼다 해도 마찬가지로 처리했을 것이다.

그나마 상윤이는 이정도의 의사표시가 가능하니 일을 벌일 수 있었지만

소통이 힘든 수많은 장애인들이 당하는 고통을 생각해 보면 가슴이 아파 잠을 잘 수가 없다.

 

다행히 아들은 이번의 쓰라린 경험으로 '자기 방어'라는 이슈에 대해  조금이라도 인식을 한 것 같고,

주변에서 이해를 하고 위로해 주니 충격은 많이 가신 듯해 보인다.                 

그러나, 그날 이후...어미는 아주 많이 힘들다...

어차피 비장애인들과 꼭같이 대접받기를 원한 것은 아니지만...

저항하지 못하고, 방어하지 못 하는 무력한 존재들이라고 이렇게 함부로 '가혹한 장난'을 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최근 인터넷에 유포되어 문제로 불거진 '로우 킥' 동영상을 보며

또다시 분노가 머리를 처든다.

나는 그래도 인간의 선함을 믿어왔고, 끝까지 믿으려 애썼다.

그러나..이제는 순자(荀子)의 성악설을 믿어야 겠다.

 

<<순자는 인성이 비록 악하지만, 사람의 후천적 노력에 의하여 선한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이러한 능력은 누구에게나 갖추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모두 발휘할 수만 있다면 평범한 사람도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인성이 형성되는 사회적 조건에 주목했고 교육의 효과를 강조했다.>>

 

결국..나는 아직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교육과 사회의 의식적 변화에 의해 악하게 태어난 인간도 성인이 될 수 있다 하기에..

 

 

 

10월 21일 오후...특수학급 선생님과 통화하고 있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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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우킥 동영상'은

1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어린이를 뒤에서 걷어차 넘어뜨린 후 도망가는 장면을 담고 있어

'아동 폭력' 논란을 일으켰다

 

                                                 '꼬마에게 잔혹한 로우킥' 경찰 수사착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