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이야기..about Daniel

'아줌마'라 불리는 친구...

슈퍼맘빅토리아 2011. 10. 7. 16:14

**윗 사진에 등장하신 분들은 아들의 또 다른 아줌마 친구분들...교회의 집사님들입니다.

 

 

내 아들 상윤이는 자폐성 장애 3급의 스무 살짜리 청년이다.

 지금 그의 베프(베스트 프렌드)는 쉰세 살의 아줌마이다.

 아이가 4살 때 구립어린이집에 입학한 이후 지금까지, 나는 그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까지 온갖 정성과 뇌물성 선물을 한반 아이들에게 쏟고

 그들의 어머니들과도 끈끈한 유대를 맺었지만,

 우리가 흔히 ‘친구’라고 부르는 관계의 또래는 여전히 생기지 않았다.

물론, 잠시 일방적인 애정과 관심을 쏟다가 상윤이의 무반응에 손들고 떠나간 서너 명의 아이들이 있기는 했다.

한 떼의 아이들을 불러들여서 마당 한가득 난리를 치고 놀아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귀를 막고 구석에서 혼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아들은 그들의 접근을 귀찮게만 여겼고,

두어 번 내 눈치를 보며 시도를 하던 아이들은 금방 관심을 잃어버렸다.

학교에서도 선생님의 개입 없이는 원반아이들과 어울리지 못 하던 상윤이를 위해

어렵게 찾아낸 ‘사회성 그룹’에 들여보내려고 두 곳에 이름을 올려놓은 후,

한곳에서는 몇 년이 지나도 연락조차 없어서 포기했고 일산백병원에서는 사회성이 너무 낮아 그룹에 끼지도 못 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담임선생님과 내가

보기에 그럴 듯한 대상을 찾아 아들의 ‘친구’로 만들어 주려는 시도는 계속 되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지나고 보니 가장 큰 이유는 상윤이가 친구를 사귈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탓이었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고 함께 하는 놀이가 불가능한데다 혼자 중얼거리거나 뛰는 자기 놀이에만 빠져 있으니,

 또래 아이들이 달리 놀아 줄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조금만 자기 규칙에 어긋나면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

 어른들도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 모를 지경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즈음, 아들이 쓴 심리검사답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외롭다고 느낄 때’ 옆에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을 때’라고 쓰고,

‘우울할 때’ 옆에는 ‘친구들이 모른 척할 때’라고 써놓은 것이다.

 무관심한 척 반응도 보이지 않던 아이가 어쩌면 제대로 반응할 줄 몰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들이 반응을 준비할 동안 상대방은 관심을 벌써 다른 곳으로 돌려버리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아들에게는 아들의 방식대로 함께 놀아 줄 ‘친구’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때부터 나는 상윤이에게 맞는 ‘친구’가 어떤 사람일지에 대해 다시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다.

첫째, 상윤이의 반응을 참고 기다려 줄 수 있는 사람.

 둘째, 상윤이의 행동 특성에 대해 이해를 할 수 있는 사람.

셋째, 넷째...... 조건을 하나씩 더해 가면서 나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나를 제외하고 이 세상에 이 조건들을 다 충족시킬 친구는 하나도 없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불현 듯 떠오른 사람이 하나 있었다.

 상윤이가 6개월 때부터 계속 앞집에 살면서 ‘가짜엄마’라 부르는 옆집의 승호엄마!

그러고 보니 후보가 한 사람 더 있었다.

 상윤이의 여동생 친구의 엄마이며 유치원 선생님을 지낸 연지엄마도 있었다.

 어찌 또래만이 친구라 할 수 있으랴. 서양에서는 연배가 달라도 친구를 잘도 만드는 것을 보았다.

내친 길에 매우 진지하게 두 분에게 이러이러한 연유로 상윤이의 친구가 되어주실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파안대소를 하며 유쾌히 승낙을 해주신 두 분의 격려에 힘입어 아들에게 의사를 물어보았다.

‘좋아요! 이제부터 아줌마들이 제 친구예요, 아싸~’라며 약간은 기계적으로 아들은 대답했다.

물론 ‘친구 맺자’한다고 해서 바로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부터 아줌마들과 ‘친구하기 연습’에 들어가서

지금은 나와 관계없이 문자를 주고받으며 가끔씩 데이트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특수학급을 중심으로 상윤이의 친구들이 하나씩 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래의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 밖에서 만나서 어울려 다니거나

쉴 새 없이 문자를 주고받고 생일을 챙기는 것은 아직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가끔씩 문자를 하는 친구나 신상조사서의 친구 란에 이름을 적을 수 있는 아이는 생겼다.

학령기가 지나고 ‘특수학급’에서 맺은 교우관계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멀어지다 보면,

남는 것은 주변에서 오래오래 지속되어 오는 인간관계뿐일 게다.

운 좋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진짜 친구를 만나게 되면 그지없이 좋겠지만, 지금으로 봐서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아스퍼거 신드롬을 가진 ‘스티븐 쇼어’ 박사의 ‘벽을 넘어서’나 ‘다니엘 타멧’의 ‘브레인맨, 천국을 만나다’에서처럼

성(性)이 같거나 혹은 다른 동반자를 만나는 경우에도 자폐성으로 인해 관계 유지에 매우 큰 어려움을 보이는데,

하물며 그들처럼 자립도가 높지 않은 중간 정도의 자폐성 장애인인 상윤이에게는 얼마나 더 힘들 것인가.

 

나는 자폐성 장애인에게는 일반적인 ‘친구’의 패러다임을 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미국의 자료를 보면 ‘맹도견(service animal)'을 자폐인의 파트너로 붙여주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본다.

한 개인과 소통하고 서로 아끼고 위로해주는 관계가 된다면 사람과 짐승과도 친구가 될 수 있고,

나이 따위의 인간이 정한 범주를 벗어나도 얼마든지 친구로 지낼 수 있다고 본다.

 상윤이의 아줌마 친구들처럼 주변의 서로 잘 알고 익숙해진 관계 안에서 친구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발상일 듯하다.

지난 삼 년 동안 꾸준히 훈련을 해온 결과,

요즘 상윤이는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핸드폰과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동안 알고 지내던 젊은 선생님들과 연락해서 약속을 잡고 만나는 것을 연습 중이다.

’아줌마‘에서 출발해서 ’청년‘ 및 ’장년‘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으니

앞으로 몇 년 동안 연습을 거듭하다 보면 ‘폭넓은 친구관계’를 즐기는 멋진 사람이 되지 않을까 기대를 걸어 본다.

 

 

**한국 자폐인 사랑협회에서 '자폐인의 친구'라는 주제로 원고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아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