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계모' vs '한국 계모'
‘미국 계모’ vs ‘한국 계모’
자폐인 ‘송상윤’의 어머니 ‘남영’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우리 두 사람은 따로, 또 같이 한길을 가고 있었다.
‘백진숙’씨......미국 ‘얼바인’에 사시는 자폐성 장애인 ‘제프리’의 엄마다. 그녀와 나는 지난 7월 6일, 밀알학교에서 열린
‘자폐성장애인의 자립을 위한 부모 역할의 이해와 지원’을 주제로 한 그녀의 강의에서 두 번째로 마주쳤다.
두 시간이 넘도록 차분하게, 때로는 열정적으로 털어놓는 23년 동안 제프리를 키운 이야기를 들으며 신기할 정도로 공감을 했다.
진숙씨나 나나 의사들조차 장애의 진단부터 갈피를 못 잡던 이십년 전에 자폐 아이를 낳아 키웠다는 이유로
지금 같으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무지하게 겪었다. 양육과 교육의 모든 과정을 직접 부딛혀 깨지며 터득한 것이라 상처도 많았지만
그만큼 단단하게 굳어진 상흔은 아들들의 성인기를 제법 당당하게 맞이하는 근간이 되었다.
장애가 있다고 무조건 봐주거나 감싸 안지 않은 채 할 일은 시키고 인간의 기본 도리는 가르쳐야 한다고 믿었으며,
부모가 한 살이라도 젊고 아이가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부터 독립생활의 기초가 되는 생활의 기술들은 단호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진숙씨는 주장한다. 가정이나 학교, 교회와 기관 등 아이가 가는 모든 곳에서 아이를 일관되게 지도할 수 있도록 그들을 설득하고 계도했으며
, 사회에 아이를 최대한 노출시키고 경험을 쌓게 하였고 ‘안 되는 일은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교육시켰다.
상과 벌을 엄격하게 구분해 실행하는 동시에 아이의 자폐적 특성을 오히려 강점으로 삼아 관찰하고 교육시켜
미래의 직업으로까지 연결할 수 있도록 장점과 특기를 찾아내려 노력했는데, 이 모든 교육방법이나 신념이
마치 둘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던 것 마냥 근접했다. 장애자녀를 돌보느라 비장애 자녀(그녀와 내게는 한 해 태어난 귀엽고 똑똑한 두 딸이 있다)와
다른 가족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 애썼던 부분 역시 나와 같았다. 우리 둘 다 부모교육이나 세미나가 열리면 빠짐없이 쫓아다니며
‘자폐증’에 대한 지식을 넓히고 아이에게 맞을 법한 치료나 교육을 찾아다니는 데도 열심을 기울였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어디에 살든지 발달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방식은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가끔씩 책이나 방송매체를 통해서 접하는 미국의 자폐인 부모의 교육방법이나 양육철학도 결국 큰 줄기는 다름이 없다고 본다.
심지어 자녀가 커가는 과정이나 자라는 모습까지 비슷하게 다가온다. 강의가 끝난 후 사석에서
‘계모짓을 제대로 해야 아이가 똑바로 자란다’라는 농담 같은 진담을 나누며 우리는 서로에게서 각자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진숙씨는 현재 주변의 몇 가정을 모아 ‘사회성 그룹’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는데
그녀의 절대적 헌신을 토대로 비장애 형제자매들까지 봉사자로 활동하며 큰 의미의 가족공동체로 커가고 있다.
이번 강의에서도 ‘사회성 그룹’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만들어서 어떤 방식으로 끌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한국의 부모들에게 전해주었다.
3년 전, 활동이 매우 활발한 미국의 비영리단체들과 기관들을 방문조사하면서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부분이
거의 모든 단체들이 부모자조그룹을 모태로 해 몇몇의 장애자녀를 둔 가정이 중심이 되어 출발했다는 점이었다.
당사자와 부모이기에 그 절실함의 본질을 알기에 우리나라에도 이같이 부모가 중심이 되는 작은 자조그룹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진숙씨가 한국에 머문 4 주 남짓한 기간 동안 여러 번 만나기도 하고 길고 긴 통화를 하면서
‘부모전문가’가 해야 할 역할과 갖추어야 할 소양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삼년 전 캘리포니아 ‘얼바인’에서 열린
어느 특수교육기관의 십 주년 기년행사에서 한 테이블의 옆자리에 앉게 된 ‘미국 계모’ 백진숙씨와
고교 졸업 이후 자폐인의 진로를 준비하던 중 발달장애인에게는 천국 다음이라는 캘리포니아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 달반 동안 아들과 함께 캘리포니아의 기관들과 관계자들을 찾아다니고 있던 중이던
‘한국 계모’ 남영의 만남은 이처럼 내내 이어질 필연이었나 보다.
오늘도 우리는 페이스북을 통해 안부를 나누고, 서로의 행보를 지켜보며 교류를 계속할 것이다.
상윤과 제프리는 대화 중...
현민, 제프리의 동생 린지, 상윤, 제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