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 기간..
일찍 하교한 아들과 함께 뒷산에 올랐다.
사월 끝자락에서 봄을 만나러..
작년 봄부터 공사를 시작해 공원으로 탈바꿈한 뒷산...
순진한 시골처녀 같은 흙길을 시멘트로 덮어놓아 아쉬운 마음 크지만
아기자기한 손길로 구석구석 빠뜨리지 않고 꾸며놓아
새색시 신혼집 구경가는 기분으로 찾아간다.
매번 꼭같은 포즈로 사진 찍는 아들에게 '조금 더 멋진 포즈 없남?'했더니 어깨를 살짝 비틀고 짝다리를 짚는 센스..ㅎㅎ
예전에는 배드민튼장이었던 곳..
항상 바람이 거세 이곳에서 배드민튼 치는 사람을 8 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 했다..ㅎ
자그마한 데크에 바비큐 테이블 처럼 생긴 의자와 탁자도 만들어 놓고..
파라솔까지 모셔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보기보다는 꽤 가파른 경사로다..
오른쪽 언덕 아래 예전에 살던 집이 있다.
재개발 할 때까지 지인이 살고 계셔서 아직도 장독대와 살림살이 일부, 그리고 '비밀의 밭'은 남아있다.
가끔씩 풀도 뽑고 된장 손질도 해야 한다..올봄엔 된장을 서 말이나 담갔다..뿌듯해~ㅎㅎ
볕이 좋아 아주아주 맛있고 콤콤하게 익어가는 이쁜 된장..사랑한다..
저 멀리 상암동이 보인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뽕밭이 변해 푸른 바다가 되는 것만큼이나 믿기 어려운 일..
쓰레기더미 위에 마천루 무성한 신도시가 들어서다..
올라간다..헉헉..
뒤돌아 상암동을 다시 내려다 본다..
skyscrapers...첨단 미디어 도시란다..
가끔 관통해 보는 차가운 시가지는 아직 낯설다..
고개를 넘어가면 지금 사는 아파트 단지가 나온다.
왼쪽 길은 깊은 산으로 인도하는 길..
비단산이다..꽤 깊은 산인데 계속 따라가면 '서오능'과 만난다.
산중턱에 몇 개의 운동기구들이 기다리고 있다.
쫄라맨 닮은 사람들이 친절하게 사용법을 가르쳐 주는 그림도 붙어있다.
짜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운동기구이다.
'skywalker'...
눈 아래 펼쳐지는 아득한 속세를 바라 보며 공중을 걸으면 이런 느낌이 날까..
발판을 딛고 무릎을 펴고 걸으면 자연스럽게 리듬이 붙는다.
허벅지 뒷 근육까지 시원하게 쭈욱 펴지는 느낌..
오늘도 황새를 좇으려는 뱁새의 눈물겨운 워킹은 계속된다..롱 다리가 될 그 날까지...^^*
제니퍼 로페즈의 아름다운 탄력을 훔치기 위해..하하
(How I envy her beautiful derriere...!)
어느새 옆구리를 공격하는 사랑의 핸들(lovehandle)..
가슴과 허리의 경계를 표시하는 약 5 cm너비의 띠와 같은 손잡이..
그러나 이름과는 달리 뭇 중년남녀의 고민거리..
두 팔을 뻗어 기구의 손잡이를 잡고 곳꼿이 서서 허리만 양쪽으로 끝까지 돌린다..쥐가 날 때까지..
집중공략하라..
300 세트는 기본...보너스로 등까지 매끈해진다..Yes!!
울타리를 따라 올라가면 깊은 산이 나온다.
서오능까지 약 2 시간 정도 걸린다.
내게 참 착한 친구 같은 길이다..
그의 손을 잡고 한참 걷다 보면 그의 내음에 취해 내 힘듦을 내려놓는 그런 친구...
말없이 보듬어 안는 그런 친구...
아파트 쪽으로 걸어내려 가는 길...
예전에 이 길 양쪽에는 유난히 제비꽃이 흔했다.
두 번의 봄을 보내고 서너 번 시도한 끝에 야생 제비꽃 무리를 우리 집 마당으로 이주시킬 수 있었다.
그들은 아버님의 잔디밭 한 켠에서 아직도 얌전히 살고 있다.
약수터 올라가는 길..
방부목으로 계단과 데크를 만들어 놓았다.
언제부터 인지 모르게..우리 주변의 산과 들이 비슷비슷해져 간다.
각각의 성정을 지닌 흙길은 시멘트로 덮히고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발자국이 남겨놓은 오솔길들 조차 조경의 손을 거쳐 인위적인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나, 너희 동네나
똑같은 마스크를 두르고 똑같은 정도의 피로를 어깨에 짊어진, 똑같은 표정의 사람들이 으쌰으쌰 산으로 간다.
저 높은 곳에서 우리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시며
가소로워서, 한편으로는 그 획일함이 애처러워
전능자의 눈뿌리가 찌르르 울릴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혹 바람이 세차게 불더라도
몇 번 구르면 코 닿을 거리에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푸르름이 있고
아릿한 산비린내가 퍼진다는 사실로 인해..
아파트 단지에서 산으로 통하는 '쪽문'이다..쪽! 사랑스러워..호호
발걸음을 돌려..다시 한 번 상암동을 보러 간다..
내려 간다...아들이 졸업한 초등학교 앞에 있는 작은 분식집으로..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땀을 많이 흘렸다 핑계 대고 '팥빙수' 해달래야지..ㅎㅎ
6 년이란 긴 시간 동안 분식집 주인 언니는 상윤이의 등하굣길을 지켜 보셨다.
가끔 아이가 늦게 돌아와 종종 걸음으로 찾아다니는 내게
몇 시 몇 분에 가게 앞을 지나서 어디로 갔다고 상윤이의 동향을 정확히 알려주시며
그 와중에 김치볶음밥을 척척 볶아내고, 코흘리개 아이들 서너 명에게 간식거리를 안겨 주신다.
그 언니도 엄청 고우시다..
이토록 내 주위는 고운 언니들로 붐빈다...또 하나의 커다란 감사의 조건...
(헬렌 언니, 니카 언니..멀리 계시는 언니들 조차도 저토록 고우시다...하하)
맨날 딱딱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꿍얼꿍얼하시는 헬렌 언니 말씀을 귀담아 듣고
마구 뒤졌더니 2005년 사진이 하나 나온다..
우리 집 마당에 철쭉이 한창일 때 찍은 사진..
그러나 어이없게도 사진이름을 '진달래'라고 붙여 놓았다..ㅎㅎ
진달래면 어떻고 또 철쭉이면 어떻겠는가..
모처럼 이렇게 활짝 웃고 있는데...하하하
'빅토리아를 위하여..For Victor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가면 / 작자미상 (0) | 2009.05.20 |
---|---|
'작은 기다림'...2006년 9월 12일.. (0) | 2009.05.17 |
'풍경'...이 재무...JOOFE..그리고..나.. (0) | 2009.05.02 |
[스크랩] 사월 끝자락에서 (0) | 2009.04.30 |
헤이리 풍경.. 2008.. (0) | 2009.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