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일기의 두 번째 장..!
유월 첫째주 월요일 '마포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진행되는 '홈베이킹 초보'클래스...
첫 시간부터 빵을 굽는 일이 얼마나 까다롭고 예민한 것인지 피부에 와닿았다.
처음 만져보는 제빵기구들은 또 얼마나 낯설던지...
핸드믹서..
'오호..!저토록 간단하게 거품을 내는 구나' 싶었는데,
막상 버터와 설탕을 섞어 노르께하고 보드라운 버터크림을 만드는 일이 저리 어려울 줄이야..
말 안 듣는 당나귀 한 마리 끌고 가는 것처럼 이리저리 날뛰는 핸드믹서를 붙잡고
버터크림을 만들면서 슬슬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첫 시간에 스콘을 만들고, 두 번째 시간에는 녹차케익을 만들었다.
그것도...'4인 1 조'가 되어 호흡을 맞추는데
우리 조는 4 명 모두가 제빵의 'ㅈ'자도 모르는 멍텅구리...
게다가 4 인 중 두 젊은 녀자분들께선 커다란 캐넌 DSLR 캐머러로 영화 찍는 일에만 열심을 내고..
도네체 알아듣지 못 할 말만 하는 쿠킹 시연시간 동안 아들은 하나씩, 둘 씩 문제행동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하기야..나도 졸리는데 아들은 오죽 하겠나...
두 번째 시간을 선생님의 긴급 구조를 힘입어 겨우 넘기고 나서
결심을 굳혔다.
월요일마다 진행되는 홈 베이킹 코스는 견학의 수준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유월까지만 하기로 결정하고 나니 무거운 짐 하나 던 느낌..
이미 우리 모자의 잔은 넘치고 있다..흑흑
모든 일에 '몰입'하는 것도 좋지만,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보다 못 하나니...
아직도 끝을 모르는 과욕을 애써 꾸짖어 가라앉힌다..
아들...욕심 많은 어미를 용서하거라.. ^^*
일 주일에 한 번 요리 강의를 듣고,
요리학원에서 배우는 요리에 대해서는
배운 주중에 계획짜기부터 시작해서
재료구입과 손질, 요리와 세팅까지 상윤이에게 직접 시켜보기로 다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또 한 차례,
집에서 간단하게 만들 수 있고 매일매일 식단의 기본이 되는 음식을 만드는 것으로
Daniel의 요리 일기를 한 장씩 채워가기로 한다..
하지만 요리의 기본을 잘 모르는 아들을 데리고 기록까지 해가며 일을 한다는 것이 그리 녹록치는 않은 일..
생몸살을 치루고 있다..
곧 적응이 될 거다...
아들과 함께 한 모든 일 뒤에 지루하고 힘든 적응과정이 있었지만
한 단계, 한 단계 지나가며 몸도, 마음도 익숙해졌다.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살이에 있어 낯설지 않은 일이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자폐인의 특징 중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 가지...'상식의 결여'..
비자폐인들이 연습이나 학습없이 저절로 익히는 상식 수준의 보편간단한 일들을
자폐인들은 일일이 학습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동원해 '세상의 모든 상식'을 아들에게 가르칠 수 있다면..하고
실현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바람을 품었을 때도 있었다..
결론!!
그냥...필요한 것이 생기면 그때 그때 가르치고 채워넣자..!
그렇게만 해도 할 일이 차고 넘친다..
미리 당겨서 고민하고 절망하지 말자...
단...아주 커다란 그림은 머릿속에 그려 놓고..
그래서 지금은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다..
아들에게 물었다..
" 넌 매일 먹는 것들 중에 어떤 음식을 만들고 싶니? "
두 말 할 필요없이
"김치찌개요!!"
지난 주일 저녁, 김치찌개 만들 때 같이 해봤던 경험이 있어 자신있게 나선다..
도전..김치찌개..출발!!
쌍 V로 도전의지를 다진다..ㅎㅎ
여기까지는 내가 하는 일을 부분적으로 도왔을 뿐..반 정도는 아들이 했다.
김치찌개 준비를 하라고 말했더니 자신 있게 척척 재료를 찾아왔다..
참..! 먼저 저녁 상을 치웠다.
겨울 방학 이전부터 상 차리고 치우는 것은 아주 잘 하고 있다.
덕분에 내 일이 많이 줄었다..벌써 아들 덕을 보고 있다는 사실..^^*
아주 세심하게 일을 한다..
초짜 생짜 새댁보다 훨씬 낫다고 단언할 수 있다.
두부를 썰고..
양파를 보기 좋게 써는 법을 가르쳐 줬더니 잊지 않고 뿌리부분을 V자로 예쁘게 도려낸다.
방사형으로 잘도 썬다..
평소에는 잔소리 듣는 것을 끔찍히 싫어 하는데, 요리 배울 때는 순한 양이 된다..ㅋㅋ
정말 잘 하고 싶은가 보다.. 좋아하는 것은 말 할 나위도 없고..
삼겹살 썰기...
비슷한 크기로 예쁘게 착착 썬다.
김치 썰기...김치찌개 용으로 김장김치를 보관해 두고 있다..
칼 질 할 때 칼을 잡지 않은 손 끝을 말아넣어야 한다고 잔소리..!
그래야 안전하게 빨리 칼 질을 할 수 있다.
애써 말아 넣는 아들..
가스렌지 불을 켜고...전기레인지를 놔두고 일부러 바깥베란다의 가스렌지를 쓰게 한다..
불 조절 하는 것을 배우게 하려고....
포도씨 기름을 두르고 고기부터 넣고 볶다가 양파를 넣고 달달 볶는다..
이제 이 정도는 말이 필요치 않다..오토파이럿!! *^^*
어찌나 진지한 지 옆에서 셔터를 눌러도 쳐다 보지도 않는다..
완전한 몰입...
어쩌면 아들은 '김치찌개 만들기'에서 Flow를 경험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라 믿는다..
그의 진지함이 너무 자랑스럽다.
거의 다 되어 간다..
미리 준비한 멸치 다시 육수를 자작하게 붓고..
뚜껑을 닫고 끓인다..
참고로..냄비는 내가 쇠수세미에 재활용비누 묻혀서 박박 닦아서
반짝반짝 윤이 나게 만들었다..ㅎㅎ
언제나 남아 돌아가는 힘?
뚜껑 열어 잘 끓고 있나 확인도 한 번 해 보고..
찌개가 끓을 동안 막간을 이용해 설거지를 한다.
이미 잘 훈련되고 있다..
요 예쁜 빨간 수세미는 스폰지 전용 아크릴실로 친정어머니께서 떠주신 것..
헹굼 전용 수세미도 따로 놓고 쓴다..물 절약..뽀도독 깨끗이 씻겨지고..
설거지를 마친 뒤 비누로 빨고 식촛물에 담궈서 소독한다..이틀에 한 번씩 맹물에 푸욱 삶고..
이 모든 과정을 아들에게 가르친다..
찌개거리가 거의 익으면 두부 넣고...
잘 섞어서 조금 더 끟인다..두부가 으깨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또 잔소리..
'네~'대답하는 착한 제자..ㅎㅎ
두부가 익을 동안 또 나머지 설거지..
드디어...완성이다...상윤 표 김...치...찌...개....!!
마지막 점검...가스 코크를 잠근다...!!
김치찌개를 맛있게 끓이고 나서
아들은 말했다..
"엄마, 다음에는 돼지고기 맛있게 삶는 것 좀 가르쳐 주세요..."
당연하지, 아들아..! 불고기 재는 것도 가르쳐 줄게...
네가 사랑하는 음식만 만들 줄 알아도 네 식탁은 풍성하게 차고 넘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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