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쿡(Wellcook) 요리학원, 강서구 발산동..
유월 대장정..
아들이 고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나는 유월을 기다려 왔다.
그즈음이면 학교 생활도 적응되었을 테고, 행사 많은 오월도 지나고,
한숨돌리며 본격적으로 '요리 배우기'에 나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첫째..학교에서 조퇴나 결석이 아닌, 수업으로 인정을 받는 방법을 찾아야 했고,
둘째..아이를 받아줄 수 있는 교육기관을 찾아야 했고.
세째..국가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봐야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것은 아들의 의사였다.
어릴 때부터 먹는 일에 매우 열심을 보였던 아이였지만, 해산물에 대한 편식이 심해서
본인이 먹지도 않고 거의 공포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해산물을 손질하고 요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아들 역시 요리를 배운다고 꿈에 부풀어 있었기에 그가 무척 좋아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다시 한 번 확인을 했다.
'해산물을 먹지도 않는데 만지고 조리하고 할 수 있니? 요리사가 되려면 해물요리는 기본인데..'라는 나의 말에
'할 수 있어요...꼭 할 거예요..'라는 아들...
그래 ...믿을게...
그리고 6 월 30일...
그의 말 대로 오징어를 깨끗이 손질해서 칼집을 넣고 데쳐서 해물구절판을 만들었다..
이것도 우리 가족에게는 작은 기적인 것을...
나 : 너, 오징어 무서워하잖니...만질 만 했니?
아들 : 그리 끔찍하진 않았어요(아들의 별명은 文語體 소년이다..ㅎㅎ)..하지만 먹지는 않을 거예요.
바다냄새가 너무 싫어요..구역질 날 것 같아요...
이렇게 아들은 '오징어 공포증'을 조금씩 극복해 간다.
그만큼 요리사가 되고픈 그의 소망이 크다는 말일게다.
학교에서는 재원증명서를 제출하면 수업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등록 후 전화 한 통으로 간단히 해결되었고..
원적 학급 담임 선생님께도 역시 전화 한 통으로 모든 절차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원반 담임으로부터 안부 전화 한 통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아무리 특수학급에도 소속이 되어 있는 아이라 하더라도
매일 학교에서 볼 수 없다면,
한 번쯤은 부모에게 연락을 해보는 것이 당연한 순서일 듯하지만
전화 한 통, 안부 한 번 물어오지 않으시는 것은 지나친 듯하다.
학기 초, 원반 친구들과 함께 잘 지내라는 의미에서 조금은 과분한 듯한 대접도 베풀고,
선생님께도 당신이 원하시는 쪽으로 인사를 했건만 침묵을 지키실 따름이다.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것에도 이제는 한계가 온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도리를 지켰기에 나 역시 침묵을 지키고 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10 년째 통합교육을 시키면서 거의 수모에 가까운 대접을 받은 적이 꽤 있었다.
하물며 나처럼 당당하고 용감무쌍한 어미에게 그 정도였다면,
얌전하고 내성적인 어머니들은 얼마나 견디기 힘든 일이 많았을까..
물론, 그런 취급에 굴할 내가 아니었지만,
장애을 가진 자식을 볼모로 잡혔다는 이유로
평화로운 해결을 위해 혀를 깨물며 분노를 삭히기도 했다.
어차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어우러지는 통합사회를 지향하는 시점에서
학교에 소속이 되어있을 때만이라도 선생님들과 급우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아들을 받아줄 수 있는 교육기관을 찾고, 국가에서 받을 수 있는 지원책을 알아보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과제였다.
일단 인터넷으로 지역적으로 가까운 범위 내에 있는 시설 요리 학원과 공공 교육기관을 찾아 보았다.
신촌 방면의 몇 군데 유명 요리학원에 전화로 문의했을 때,
아들의 장애에 대해 말하고 내가 함께 수업을 받을 거라고 양해를 구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했다.
세 번째로 전화를 건 곳이 맨 위에 있는 사진 속의 학원이다..
시원스런 음성으로 너무나 흔쾌히 등록하라는 말씀에 재차 확인을 했지만
이미 그 학원에서는여러 유형의 장애를 가진 수강생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며
오히려 내게 부담을 갖지 말라고 하셨다.
다음 날 운전을 해서 찾아가보니
나중에 상윤이가 적응되고 나면 굳이 내가 일일이 데려다 주지 않아도 지하철로 다닐 수 있을 편리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상윤이와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을 하는 '취미요리반'에 등록을 했다.
흐뭇한 가슴을 안고 집에 돌아와 교육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으나
사설기관에서 교육 받는 경우에는 마땅한 지원책이 없었다.
더구나 나와 함께 다녀야 하니 이중으로 학원비를 부담해야 한다.
장애등급이 1급이나 2 급 정도로 높으면 바우쳐를 활용할 수도 있는데
아들처럼 3 급이나 그 이하이면 바우쳐제도조차 아직 요원한 이야기이다.
국가에서 교육을 제공해주는 경우 또한 마땅한 기관이나 제도가 없다.
직업훈련기관에서는 실업자나 유휴여성인력의 재교육에 중점을 둘 뿐,
장애인, 그것도 자폐인에게 전환교육과 직업교육을 시키는 곳은 찾을 수 조차 없었다.
카톨릭 재단의 복지관에서는 꽤 여러 곳에서 지원과 교육을 하고 있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
학교에서 수업인정을 받으며 교육을 받을 수 있을 수 있을 지는 의문이었다.
그날 밤 신문을 보다가 '마포 여성인력 개발센터'에서 끼워놓은 전단지를 발견했다..
재취업훈련들 가운데 일반수강생들을 위한 요리클래스가 여러 개가 있었다.
다음날 전화로 사정을 얘기하니 스탭들끼리 의논을 해본 뒤,
' 베이킹 초보 클래스'에 나와 함께 받아주겠다고 승락을 했다.
수강료도 개인학원보다 시간 당 만원이나 저렴해서 '올타꾸나' 탄성을 올렸으나....
6월 2일 첫 클래스에 들어가자 마자 환상은 무참히 깨어졌다.
ㄸ
웰쿡 요리학원 원장님...7 살 아들을 둔 어머니..
키도 크고 늘씬하고, 뽀얀 피부...한 마디로 아들의 이상형..ㅎㅎ
무엇보다 편견없이 시원시원한 성격이 가장 돋보이는 점이다..
나는 기도한다...주님..이만한 처자를 배필 삼아주시면 진짜로 참한 시어머니 될게요..라고.. ^^*
선생님을 처음 만난 아들은 넋을 잃고 한참동안 쳐다봤다.
웰쿡 요리학원 내부 풍경
시연 조리대...선생님의 무대이다..
아들의 오른 쪽 조리대가 우리 모자의 단골 일터이다.
앞치마 끈을 묶는 아들... 제복에 익숙한 어미는 복장부터 체크한다...ㅎㅎ
'드레스 코드'를 맞출 줄 알아야 한단다.. 도구 사용에도 능숙해야 하고.. ^^*
마포여성인력개발센터..7월 4 일, '서대문 여성인력개발센터'로 거듭나 신촌기차역 부근의 새 건물로 이사간다.
유휴여성인력의 치업이나 재취업을 위한 여러 가지의 직업훈련을 하고 있다.
실업자들을 위해 정부보조가 많이 나온다..일종의 바우쳐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셈이다.
일반인을 위한 프로그램 중에 '나만의 블로그 꾸미기'도 있어서 호기심 쫑긋 ^ 하였지만...
대의를 위해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마포여성인력개발센터 의 조리실 풍경
이리저리 둘러보며 탐색에 골몰한 아들...
지금까지 알아본 바로는
개인학원이나 직업재활센터나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재학 중인 3 급이하의 장애인을 위한 지원책은 찾을 수 없었다.
우선, 계획에 맞추기 위해 급한 대로 개인 학원에 등록을 해서 다니고 있지만
차차 정책적, 제도적 지원을 알아볼 계획이다.
지난 유월 동안 '마포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4 번의 홈 베이킹 클래스 에 참석을 했다.
스콘, 세 가지 종류의 쿠키, 단호박 타르트, 콘브레드, 호밀 단팥빵까지 꽤 여러 종류의 빵과 과자를 구웠는데
정작 머릿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버터와 흰 설탕'이 무지하게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 ㅎㅎ
그리고 빵이란 넘은 여인 처럼 예민하고 섬세해서,
아주아주 조금만 넘치거나 모자라도 금방 표시가 난다는 것..
(예를 들어 계란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하다 실수로 흰자 분리한 것에 노른자가 조금 들어갔더니
'머랭'에서 거품이 잘 나지 않는다...'머랭'이 뭔지 모르시는 분은 굳이 알려 들지 마시길..호호)
생전 처음으로 도전해 본 베이킹 클래스를 통해서 나는 아들과 자신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아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시키기 위해서,
아직은 내가 그 분야에서 보조 선생님 정도의 역할은 감당해야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
아들에게 베이킹과 같이 아주 세심한 작업 과정이 아직은 너무 힘에 겹다는 사실..
(주변에 수많은 장애인들이 제빵 기술을 배우고 있는데
그들을 어떻게 교육시키는지, 과정을 자세히 알아봐서
아들에게 맞는 개인적응 프로그램(I.E.P)를 만들어야 겠다.)
그리고 12 명 이상의 수강생들이 3~4 인 1조로 팀을 짜서 하는 수업은 아이에게 지나치게 버겁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름은 '초보 베이킹 클래스'인데...우리 같은 완전 초짜 왕초보에게는 지나치게 건너뛰는 과정이 많고,
재료를 저울질하는 것부터 오븐에 굽고 식히는 일까지 완전히 혼자, 그것도 익숙해 질 때까지 수없이 해보지 않으면
제과제빵을 제대로 배울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수강생이 많다보니 아들의 시선도 자꾸 흐트러지고 집중을 잘 하지 못 했다.
그러다 보니 몇 가지 문제 행동이 나오기도 하고,
장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두 젊은 여성들의 언사로 인해 상처받는 일까지 생겼다.
한편, 개인이 운영하는 요리학원에서 '가정요리,혹은 취미요리' 를 배우면서 비교해 보니
수업료가 시간 당 일만 원 정도 비싸지만 한 사람 당 하나의 조리대가 온전히 주어져서
모든 과정을 혼자 해 볼 수 있다는 이점이 굉장히 크다.
화요일 오전 반과 목요일 저녁반을 출석해 보니, 오전에는 수강생들이 5 명 내외라
복잡하지 않고 개인지도를 받기 적합했다.
저녁시간에는 취미로 요리를 배우려는 직장인 남녀가 많아서 수강인원이 12 명이나 되어 복잡했다.
일단 사람이 많으면 주의가 흐트러지기 쉬운 특징을 가진 아들에게는 화요일 오전 시간이 가장 적합했다.
일 주일에 두 번 수업을 받는 일은 너무 벅찼다.
수업에만 참석을 해서는 배운 요리를 다 익힐 수 없었다.
돌아서면 나조차 레시피를 적은 종이를 봐야할 정도이니 초보인 아들은 어떻겠는가..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일 주일에 한 번 수업을 듣고
그 수업에 배운 요리를 그 주 안에 집에서 한 번 해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수시로 복습하고,
요리의 기본이 되는 모든 것(재료 구입에서 그릇에 담아내어 상을 차리고 마무리 설거지까지)을 세세하게 쪼개어
하나씩 집에서 연습을 하다 보면 조리사 시험을 볼 준비도 될 것 같다.
학원에서 기본 지침을 세워주고 세부사항은 집에서 충분히 채워넣을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로... 요리를 하기 위해 배워야 할 것들을 정리해서
'송씨 남매을 위한 요리 지침서' 를 만들 계획이다.
어제..아들은 고등어 조림과 경상도식 '뚝딱 육계장' 끓이는 법을 일 단계 배웠다.
가르쳐야 할 것은 너무 많아서 답답할 때도 있지만,
열심히 눈을 반짝이며, 어미의 잔소리를 꾹 참아가며 정성스레 칼질을 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새 힘을 얻는다...
나는 육신으로 아들을 낳았지만, 나의 정신은 그를 통해 거듭난다..
감사에 감사를 더하며 다시 한 번 마음을 굳힌다.
'아들의 요리일기..D's Cooking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 부엌도령의 추석나기.. (0) | 2009.10.08 |
---|---|
먼 앞날을 준비하다... (0) | 2009.09.11 |
거리에 비가 내리면...서울은 장마 중.. (0) | 2009.07.20 |
두번째 : 도전! 김치찌개... (0) | 2009.06.20 |
D의 요리일기, 첫 페이지를 열다..'카츠나베'만들기,090606 (0) | 2009.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