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이었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5 학년...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연신 상을 받아오자 덕분에 어미인 내게까지 여파가 미쳤다..
당시에 아들은 6 학년이었고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였다.
집안일과 두 아이들 돌보고 이곳저곳으로 교육시키러 실어나르느라, 날마다 초주검이 되다시피한 정도였기에
컴퓨터는 내게 가까이 하기 너무나 어려운 <<가/전/제/품 >>중 하나였다.
그러한 내게 학교신문에 '부모로써 한 말씀' 해달라는 원고청탁이 들어오니
얼마나 난감하던지...
거절하고 싶었지만 담임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이 있어 며칠을 끙끙거리다 겨우 쓴 글이 아래에 붙인 글조각이다.
'레터'님과 '들꽃 피는 언덕'님과 글을 나누던 도중에,
아파트로 이사오기 전 살던 옛집이야기가 나왔고,
당연히 '비밀의 밭'도 내 추억에서 끌려 나왔다.
지금 읽어보면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조야하지만..
만 팔 년전 부모님의 댁으로 이사들어가서 새로 얻은 기쁨 중 가장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내 짧은 농사의 추억'에 관한 진솔한 경탄이 담겨 있어
밭 사진과 함께 옛집 정경을 올려 본다.
<< 당당한 외관에 어울리지 않게 자잘하고 귀여운(^.~*) 글씨체..
이것이 나란 사람의 속성!!..호호 >>
이곳이 비밀의 밭 이다..
집 바깥에서 보면 이곳에 밭이 있다고는 생각도 못 할 일..
이십 년전, 처음 시집와서 밭에서 상추를 따오라시는데 어딘지 몰라서 집 밖으로 나간 적도 있었다.
이층으로 올라가서 옥상 물탱크 올라가는 계단으로 나가다가 육중한 이중 스텐레스 문을 열고 나가서,
또 한참 돌아가면 이곳이 나온다..
그러니 '비밀의 밭'일 수 밖에..
나는 윗글에 썼던 대로 이곳에서'키움의 철학'을 익혀갔다.
가지 모종
밭이랑을 일구다..
가장자리의 부추밭..
봄부추는 피가 된다는 말이 있다.
시중에 파는 것보다 열 배는 향이 강해
초봄부터 겉절이에, 부침에..입맛을 돋구었다.
씨 뿌리는 날..어머님..
초봄의 모습만 있어 아쉽다..
여름엔 이틀만 돌보지 않으면 우거져 버리는 잡초들 때문에 온통 전장이다.
사진을 찍는 나...
남편이 입다 버린 긴팔 와이셔츠 + 목 긴 남자장화 + 몸빼 비스무리한 츄리닝을 장화 속으로 우겨 넣고,
목에는 허연 수건을 둘렀다.. 이른바 村婦스타일..
이 차림으로 나가면 도무지 몰라볼 것이다..ㅎㅎ
잠시 딴정신 팔다가 며칠만에 밭에 올라가서 두어 시간 풀을 뽑고 나면
無念無想....다 잊을 수 있다..
손을 놀려 일하는 정직한 노동의 댓가는 이토록 값지다.
닭장의 잔해..예전에 이곳에 닭을 키웠다.
내가 이사와서도 두 해 동안 키웠는데 다 키워서 잡으면 수닭 다리 하나가 칠면조만큼 커보였다.
뼈도 억세고 살도 질겼지만..진짜 닭 이었다..ㅎㅎ
마당 한 켠의 고추밭..
고추모를 쉰 개정도 심으니 우리 가족이 먹고도 남아 많이 나눠줬다.
저녁 상 차리기 전 바로 따서 씻어먹는 상추와 고추..그 맛을 잊을 수 있을까..
이곳에 살 때는, 솔직히 말해서...지겹도록 힘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지긋지긋함 조차 그리우니...
지나간 것은 다 아름다워 보이더라?
2006년 부모님...당시 아버님 84, 어머님 75...
하지만 너무 짱짱하셨다.
두 분다 70대 초반, 60대 후반의 건강을 유지하셨다.
모과나무 꽃,,
서리내리기 전 모과를 딸 때면 어김없이 바쁜 남편..
한 해도 빠짐없이 모과따기는 내 전담이었다.
하긴...힘쓰는 일은 거의 내 몫..으흑!!
대문에서 계단을 올라가며 찍은 사진.
춘천 조 진희 교수님의 어머니께서 고이 싸주셔서 우리집으로 입양온 '금낭화'..
내 두 열매도 이리 풋내 났다..
딸아이는 아직 볼에 젖살이 그대로 남아있어
이 사진 올린 것 보면..나 한참 곤란할 것 같다..ㅎㅎㅎ
진달래..아짐..호호
몇년 전이라 때깔이 다른 듯..
꽃사과 나무 만개하다..
뒷산에서 퍼와서 자리잡은 제비꽃..
삼 년만에 제대로 뿌리를 내렸나 보다..
아버님의 잔디밭 가운데 서있는 석등..
자세히 보면 호미가 두 자루 꽂혀 있다.
아버님의 '연장 보관함'?
석등..네가 우리집에 와서 정체성도 상실하고 고생이 많다..ㅎㅎ
이름을 아직도 모른다..
현관옆, 그늘진 곳에 해마다 무더기로 연분홍과 흰색의 꽃을 피워내는 '어머님 꽃'..
대문에 들어오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은행나무 한 그루..
이 녀석 때문에 해마다 낙엽을 쓸고난 그 버거운 가을의 무게로 인해
나는 한참동안 밤잠도 설치고.. 한의원을 들락거린다.
작년부터 가을의 한의원행은 사라졌다.
순자야...보고싶다야...흑..
이사하면서 공장으로 데려간 순자는 열 살의 생을 마감하고 지난 봄, 공장 뒷산에 묻혔다.
참 준수하게 생긴, 진돗개 20% 정도 피를 받은 개..
내가 이사오기 전 그녀는 한 마리의 '개'에 지나지 않았다.
아이들과 내가 '순희'와 '순자'를 두고 고민 끝에 지어준 그녀의 첫이름..'순자'..
사랑하는 나의 장독대...
팔 년전 이사들어오면서 어머님으로 부터 물려받은 보물단지들, 애물단지들..
지금 이집에는 지인이 사셔서..아직도 장독대를 유지하고 있다.
엊그저께도 산을 넘어가 된장을 손질하고 왔다.
올해 서말씩이나 담근 된장은 유난히 맛있다..
뒷문 오른쪽 축대 위..찔레꽃 덤불..
여름이면 지나치게 무성해져 차를 돌리다 긁히기 일쑤여서 반쯤 잘라내어 손질을 해줘야 한다..
누가 했을까..
딩동..! 나!!!
찔레의 향기는 고혹적이나 그 가시와 질긴 줄기는 나를 무척 괴롭혔다.
뒷쪽에서 본 옛집..
문 앞의 은색차는 9년 동안 충실하게 우리 가족의 '슬리퍼' 역할을 감당하다
석 달 전 새 주인을 만나 떠나 보냈다.
아이들은(특히 상윤이는..) 이 차에서 먹고, 자고..잔뼈가 굵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BEFORE...
AFTER...
우리가 서둘러 이사하게 된 동기가 바로 뒷산에 공원을 조성하는 공사 때문이었다.
주차를 할 장소가 없어져서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많아져 재개발 일정보다 몇 년 앞당겨 옮기게 되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더니...
이곳이 옛날 배드민튼장의 모습이다.
이렇게 변했다..헉!!
글을 마무리하며...역시 난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인가 보다.. 다시 한번 느끼고..
지나간 기억은 이미 그 지난함을 버리고 아름답게 윤색되어 추억의 형태로
우리의 머릿속에 저장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나는 우리 가족의 '청지기'이자 '사관(史官)'이다..
그리고 '약방기생'이자 '무수리'이기도 하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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