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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이야기..about Daniel

숨은 그림 찾기(아들은 문제행동으로 말한다)....

by 슈퍼맘빅토리아 2012. 7. 31.

** '함께 웃는 날' 15호에 실릴 원고...

매번 힘겹게 쓰는 원고지만 부쩍 더 쓰기 싫어 이리저리 미루다가 마감시간을 코앞에 두고 겨우 탈고했다.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7년을 곱씹는 일은 이만큼 힘들지만, 자폐인에 대한 옹호의 한 가지 방법이라 여기며

한 자 한 자 토해 냈다.

 

'숨은 그림 찾기'( 아들은 문제행동으로 말한다)

자폐성 장애 3급을 가진 나의 아들 상윤씨는 이제 21살의 훈남 청년으로 자라났다.

아들이 스무 살이 되는 날, 나는 그에게 ‘씨’라는 호칭을 선물로 주었다.

 한 사람의 성인이자 객체로 존중해줘야겠다는 결심과 함께 그 역시 ‘씨’라 불리기에 합당한 어른스러움을 이뤄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한 행위였는데

제법 효과를 보인다. ‘사람은 자리가 만든다’라는 옛말이 역시 그르지 않은가 보다.

 

 

아들과 함께 보낸 21년은 ‘문제 행동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씁쓸한 에피소드들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그중에서도 아들이 7살이 되기까지의 기간이 가장 힘들어, 우리 가족에게는 ‘지옥에서 보낸 한철’로 불린다.

나를 비롯하여 우리 가족에게 ‘자폐증’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던 이 시기에 아이에게 일어났던 ‘문제행동’들을 돌이켜 보며

 사건-> 당황-> 대처와 연구 -> 인식-> 이해-> 조율과 적응의 수순으로 이야기를 펼쳐 가려고 한다.

20 개월 터울로 여동생을 볼 때까지 손 탈 일 그리 없이 순하던 아들은 ‘악머구리(한 마리 시끄러운 개구리)’로 변해,

 밤낮 가리지 않고 두 시간을 자고나면 일어나서 악을 쓰고 울기 시작했다.

 

 깨어있는 동안에는 ‘동요 테이프’와 ‘딩동댕 유치원 비디오’를 동시에 틀어놓아야 했고, 잠을 청할 때면 한 가지 더 얹어서

 방문에 봉을 박아 달아놓은 그네에 앉아 흔들어 달라며 내게 노래 부르기를 강요했다.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멈추거나 소리를 낮추면

 졸다가도 바로 알아차리고 소리를 질렀다. 6개월에 ‘엄마’와 ‘아빠’를 동시에 말하던 아이가 20 개월 가까이 말이 늘지 않더니

중국말처럼 ‘뚬바 뚬바’거리며 이상한 말을 늘어놓았다. 설상가상으로 세상에서 단 한 사람, 자신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들을 지어내어

 우리에게 알아듣기를 강요했다. ‘그드드- 거시기(그 무엇)’, ‘하야톨톨- 사마귀’, ‘포둥아- 참외’, ‘스피키- 스파게티’,

어떻게 우리가 그 뜻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못 알아들으면 그때부터 끝없이 계속되는 울음과 날뜀에 지옥을 방불케 했다.

하는 수 없이 좋아하는 몇 가지 장난감이나 과자로 달래야 했다. 그나마 가끔은 진정시킬 수 있었지만,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깨어나

 또 다른 수수께끼 같은 제시어로 어미를 고문하기 시작하던 아들. 대소변을 가리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두 돌이 지나 배변훈련을 시키려 아기변기와 예쁜 ‘쉬통’을 준비해 유혹했음에도 뺏어서 던져버리기 일쑤였고

화장실에 데리고 들어가면 악을 쓰고 울면서 나가자고 난리를 부렸다. 외출을 할 때면 아무데서나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뒤로 자빠지는 일이 다반사였고 아무 곳으로나 쫓아가버리는 통에 잠시도 아이에게서 눈을 돌릴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아이의 행동은 돌 무렵에 생긴 ‘몹쓸’ 버릇이었다.

어느 날부터 식탁에 올라가 엎드린 아이가 잠시 몸에 힘을 주는가 싶더니 잠에 빠져들었다. 자리로 옮겨 편히 눕히려 하자 깨어나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자세히 관찰을 해보니 아무래도 ‘자위’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게 아닌가.

바닥을 보면 무조건 엎드리려 하는 아이를 일으키다 보면 온 집안은 아이의 울음과 비명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방에서 구역예배를 드리느라 목사님과 스무 명 정도의 교우들이 빙 둘러앉아 있었다.

부엌에서 과일을 준비하던 나는 우리가 보기에도 가장 예쁜 동서의 앞에 아들이 엎드리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그녀의 무릎을 붙들고 몰입을 한 아이의 작은 몸이 활처럼 휘고 이마에 땀방울이 돋을 즈음, 과일 쟁반을 들고 들어가 그 장면을 목격한 나는

 교인들이 둘러앉은 그 자리에서 혀를 박고 죽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웠다. 수치스럽고 당황해서 아이를 일으키려는 엄마와

안 일어나겠다고 소리를 지르며 우는 어린 아들, 그리고 어찌할 바를 몰라 엉거주춤 말리려 하던 사람들의 모습은

 빛바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때때로 뇌리를 스쳐간다.

 

 

여기까지 쓰는 일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을 기억들을 불러오는 것이기에 며칠이 걸릴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지금 아들의 모습과 천리쯤 멀리 있는 듯 여겨져 몹시 낯선 어린 아이 하나.

그와의 소통의 접점을 찾아내는 일은 21년에 걸친 수수께끼 풀기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 ‘작업’을 ‘숨은 그림 찾기’라 부르고 싶다.

얼핏 보아서 평범한 풍경의 한 장면 곳곳에 다양한 ‘그림’들이 숨어 있는 것처럼 아이의 행동마다 겉으로 보이는 행위의 결과와는

전혀 상관관계를 알 수 없는 의도와 의미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당시로는 도무지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고 해결책도 찾을 수 없었던 ‘문제행동’들.

 그 안에 숨은 그림들을 찾아가는 길은 멀고도 힘들었다.

 

삼십오개월이 된 아이를 데리고 남편의 반대를 무릅쓴 채 찾아간 ‘소아정신과’에서 ‘반응성 애착장애’라는 낯선 병명을 얻으면서

 ‘나의 투쟁’은 시작되었다. 심리치료사 한 분과 상담을 통해 아이가 왜 그렇게 ‘이상한 짓’들을 골라서 하는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 하는 지 질의응답 식의 세션이 진행되었지만 돌이켜 보면

그녀는 교과서에 나와 있는 형식적인 지문 몇 장을 설명해주었을 뿐이라 짐작된다. 치료기관이 쉬쉬하며 갑자기 문을 닫은 뒤,

우연히 새로 만나게 된 개인상담소 선생님의 서가에서 찾아낸 템플 그랜딘의 ‘어느 자폐인 이야기’는 내게 아들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고

 누가 뭐래도 자폐임이 분명한 내 아이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찾기 위해 책을 뒤지고, 멘토를 찾아다녔다.

지금 같았으면 마음먹고 며칠만 인터넷을 뒤지면 쏟아질 정보들이 그 시기에는 얼마나 귀했던지 모른다.

여기저기서 얻은 정보들을 끼워서 ‘자폐증’이라는 거대한 퍼즐을 맞추는 일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처럼 전체 그림을 짐작할 수 없는 어려운 과제였다.

 

 

 그러나 지난 2009년 여름, ‘자폐인 사랑캠프’에서 만난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스티븐 쇼어’박사의 강연을 들었을 때,

상윤씨의 유아기에 대한 몇 가지 수수께끼를 풀 결정적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18~20 개월 사이에 발현되어 ‘자폐증 폭탄’으로 표현되는 자폐증에 대한 최초의 인식과 반응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비로소 상윤이가 보였던 난해한 난폭함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동생을 볼 무렵인 20개월쯤에 자폐증의 발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주변 환경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불편하게 느껴진 아이는 자신의 방식대로 의사를 표현한다는 것이 비명을 지르고 우는 것이었고,

자신과 너무나 다른 소통 체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유의 언어를 만들어 의사를 전달하려 했다고 짐작되었다.

‘쇼어’ 박사를 비롯한 많은 자폐아동들은 도리어 입을 닫아버리기도 한다고 전한다. 비자폐인과는 다른 청각을 가졌기 때문에

 자기를 편안하게 만드는 소리를 들으며 위안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동요를 듣거나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고,

빛의 변화에 유난히 민감한 자폐인의 특성 상 거실보다 조도가 떨어지는 목욕탕에 들어가기가 너무 무서웠을 것이고,

 소변이 몸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 싫어서 기저귀 차기를 고집했을 것이다.

 

나중에서야 실험과 관찰을 통해 상윤씨가 교회에 가는 길에는 특정한 골목으로 가야 하는 ‘규칙’ 때문에 다른 길로 접어들면

 주저앉거나 뒤로 자빠지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초등학교 6 학년 무렵에 의사소통이 눈에 띄게 좋아지던 아들이

 ‘컴컴한 목욕탕에 대한 두려움’과 ‘폭포처럼 커다란 변기 물 내리는 소리의 무서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듣고

시각과 청각이 비자폐인과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윤이가 7살 무렵까지 즐기며, 보는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성적 자기자극’의 정체가 ‘性적’이 아니라

감각이상으로 인한 ‘자기자극행동’이라는 사실도 책과 치료사 선생님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몇몇 ‘자폐증 가이드북’에는 한 번 경험을 하면 그것이 ‘규칙’이 되어 다른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 하는 자폐인의 고집을 ‘유연함의 결핍’으로 해석하고,

비자폐아동들이 굳이 배우지 않고 저절로 깨우치는 수많은 말과 행동을 자폐아동들에게 아무리 가르쳐도 배우기 힘들어 하는 것을

 ‘상식의 결여’로 서술해 놓았다. 그 책을 여러 번 읽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아들이 보이는 ‘고집’과 ‘규칙 지키기’의 의미와 결부시킬 수 있었다.

 아이가 어떤 종류의 ‘문제행동’을 보이면, 원인과 결과를 세심하게 관찰해서 메모와 일기의 형태로 기록했다.

모아둔 기록을 토대로 책도 뒤져보고 의사와 치료사 선생님들에게 질문도 해가며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행동에서 보이는 문제점이 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와 이해하는 일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문제행동’을 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겉으로 보이는 ‘문제행동’의 결과만으로 아이를 오해하는 일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러나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아이의 행동을 받아들이는 일에는 꽤 거리가 먼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끊임없이 자신을 건드리고, 나를 건드리고, 주변사람들을 자극하는 아이를 참아내며 받아주다 보니

가끔씩 이성을 잃고 ‘포효’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아이의 등짝에 새겨진 시뻘건 손자국을 어루만지며 한없는 자괴감에 빠져들기도 했다.

 아이가 의사표현을 제법 할 수 있게 되었을 초등학교 6학년 무렵, 불현듯 그는 ‘어렸을 때 왜 자신의 등을 그렇게 세게 때렸냐’고 따졌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아이에게 ‘여동생을 자꾸만 밀어서 넘어뜨려서 엄마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참다 참다 너를 때렸다‘고 말했다

. ’왜 동생을 밀었냐‘고 묻는 내게 아이는 ’동생이 너무 큰소리로 울어서 무서웠어요‘라고 대답했다. 그제사 또 하나의 수수께끼가 풀어졌다.

 어린 여자아이의 울음소리가 너무 견디기 힘들었던 상윤이가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원인제공자를 무찌르는 것‘이 아니었을까.

 만약 내가 그때 이유를 알았다면 상윤이의 귀를 막는다든지, 우는 여동생을 분리시킨다든지 하는 다른 방법을 택하고,

아들이 의사를 긍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가르치려 애썼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림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PECS 같은 도구를 그때 알았다면 아들과 나의 삶이 조금은 더 평화스러웠을 듯하다.)

나는 진심으로 아이에게 ‘너를 오해하고 때려서 미안하다’고 용서를 빌었다.

요즘 같으면 ‘엄마도 그때는 너와 말이 안 통해서 전혀 몰랐기 때문에 마냥 참기가 너무 힘들어서 잠시 정신이 나갔던 거지’라고

덧붙여 설명도 할 수 있었을 게다.

 

 

이처럼 비자폐인과 다른 감각과 언어 이해 방식을 가진 자폐인이다 보니 그동안 쌓였던 억울함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동안 자신의 상황과 느낌을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천천히 들어주고 기다려주다 보니 지금은 조목조목 따지기도 한다.

말로 하다 안 되면 내게 문자를 보내 항의하고, 자신이 보인 ‘문제행동’의 배경과 당위성을 피력하기도 한다.

이제 아들은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가진 대상의 반열에 오르긴 했지만 억울한 일투성이의 세상을 헤쳐 가는 일은 앞으로도 수없이 벌어질 것이다.

 당사자들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방법을 가르치고 연습시키는 일이 일차적으로 중요하지만

그들이 보이는 행동의 표면적 충격에 놀라고 바로 반응하기 보다는 그것의 숨겨진 의미를 찾아서 기다려 주고 이해하려는

세상 사람들의 노력 또한 만만치 않게 필요하다고 본다. 자폐인의 모든 ‘문제행동’에서 ‘문제’를 떼고 ‘행동’을 보려고 들면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리기 훨씬 쉬워질 것이다.

 

재작년에 잠시 장애학 공부를 하면서 만난 교과서에 이런 구절이 나왔다.

‘If we listen to the whispers of behavior, we do not have to hear the screams. -

우리가 어떤 행동이 속삭이는 의미에 귀를 기울이면, 비명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입장을 언어적이나 비언어적으로라도 표현하기 힘든 발달장애인들의 가족이나 지도자들이 꼭 염두에 두고 실천해야 할 ’기준‘이자

 ’목표‘라는 생각이 들어 거실에다 써붙여 놓았다.

 

아들과 보낸 초기의 7년 이후에도 소위 ’문제행동‘은 그 낯을 바꾸어서 하나에서 또 다른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

 아이가 유년기를 거쳐 청소년기에 접어들고, 사춘기의 혼란을 거쳐 가면서 다른 종류의 어려움이 순차적으로 닥쳐온다.

항상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여 작은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만 새로운 문제는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어있다.

문제를 맞닥뜨리면 언제나 놀라고 힘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연습을 통해서 일단 숨부터 고른다.

’이 또한 지나가기‘를 바라며 천천히 들여다보고 숨은 의미를 찾으려 하다 보니 조금씩 무게가 덜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부모가 겪어본 아이의 문제 행동’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고 머리를 싸매는 어미의 고충을 눈치라도 챈 듯 효자 아들은

작은 이야깃거리 하나를 던져준다. 복지관 부설 사회전환교육기관에 다니는 아이가 여름 방학 중에 영등포 장애인 복지관에서

‘장애청소년을 위한 수상스포츠 교실’에서 보조교사로 닷새 동안 일하게 되었다.

스스로 장애를 가진 애송이성인으로써 장애청소년들의 보조교사로 일하는 경험은 시도조차 흔치 않은 만큼 위험부담도 커서

 담당선생님이 고민을 거듭하며 동선과 맡은 업무를 세세히 분석해 미리 연습하게 하는 등 사전에 준비를 많이 했다.

하지만 어미의 걱정 어린 예감은 어긋나지 않았고, 아들은 자폐인 특유의 한계를 드러내어 보조교사로서의 본분을 가끔 잊기도 했나보다.

몇 가지 문제가 될 만한 행동들을 뽑아서 왜 부적절한지 설명을 한 뒤, 바람직한 보조교사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구구절절 설명을 했다.

물론 ‘문제행동’이라는 단어는 입 밖에 꺼내지 조차 않았다. 다음날 스포츠 교실이 파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게 전화를 한 아들은

 이렇게 말해서 남편과 나를 한참 동안 웃게 만들었다.

“엄마, 오늘은 ‘문제행동’을 전혀, 하나도 안 했어요. ”라고.

굳이 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아들은 그것들이 문제행동인지 스스로 파악할 만큼 깼지만,

표시나지 않게 조절을 할 수 있는 정도에는 다다르지 못 했다. 그만큼이 상윤씨의 한계인 줄 알았으니

다음에 일을 시킬 때면 감안을 해서 미리 훈련과 교육을 시키면 되는 것.

결론을 말하자면, 아이와 나는 ‘문제행동’을 통해 세상사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