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도원도'...
대한민국에서 초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분이라면 한번쯤 들어본 이름일 게다.
2009 년 10 월 7일 '국립중앙박물관'의 기획전시가 끝나면
일본의 센리 대학에서도 공개를 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가 들리고 해서
수요일 아침, 일찍 서둘러 용산으로 향했다.
<< 몽유도유원도>>
중앙광장의 오른 쪽 '서관' 풍경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구불구불 여러 겹으로 서린 줄이 보인다..
우리 것을 참 귀히 여기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의 열의 같으면 당시의 몽유도원도가 300만 원이 없어 일본으로 팔려가는 일은 결코 없었을텐데..
이때가 10시 즈음이었으니..새벽밥 먹고 집에서 나온 이들일게다.
계속해서 인파가 몰려든다.
입구부터 대형관광버스들이 이미 장사진을 치고있어 불안불안한 마음으로 올라가 보니...
거대한 龍 몇 마리가 꼬리를 물고 있는 듯,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꼬불꼬불 줄을 따라가 보니 팻말이 보인다.
'여기서 부터 5시간 반'...!!!
서둘러 얌전히 꼬리내리고
동관 2 층 '겸재 정선의 화첩'전으로 향했다.
2층 조선의'회화'실로 가면 '몽유도원도'의 사본을 볼 수 있다고 존경하는 어느 블로거께서 미리 귀뜸을 해주셨기에..
2층 미술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참에서...
전시관을 잇는 다리 위에서...자연채광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곳..
나의 문화적 동지...어느 한 구석 버릴 곳 없는 그녀를 딸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만났다.
송 영훈의 탱고도 그녀와 처음 보러 갔다...
그녀나 나나 부모님을 모시고 살기에 다른 주부들보다 일과가 빠듯한 편이다.
그래서 가끔씩 일부러 시간을 비워 문화적 자극을 받으러 나선다.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똑소리날 만큼 반듯하게 남매를 키우는 사람..
예전에 잠깐 민화를 배운 적이 있어, 완전히 盲한 내게 제법 상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투명한 유리벽에 그림을 프린트해 붙여 넣었다..
이렇게 고운 벽을 곁에 두고 겸재 전시에 관한 디지털 영상을 보았다.
전시관 입구..
*^_^*....
회화관 입구...
'몽유도원도'부터 찾아가 보니 그곳에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70대의 어느 여사께서 어찌나 소상히 설명을 해주시던지
문화해설사가 따로 필요없을 정도...
그분..멋지고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신다..
기대보다 워낙 작고 흐릿하고 바랜 그림이라 조금 실망했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니 그 정교한 묘사와 구성은 놀라웠다.
하지만 정작 내 눈길을 붙들어 맨 것은
그림에 붙어있는 안평대군의 표제와 발문(跋文)이었다.
안평대군(安平大君, 이 용)
조선 초기의 명필로 이름난 분...
세종의 세째 아들로 태어나 시, 글과 그림에 뛰어나 삼절(三절)로 불리었으나
수양대군과의 권력다툼으로 인해 계유정란 때 희생당한 비운의 왕자...
송설체(松雪體)의 대가..
내용을 해석해 붙여놓은 글을 보며
그분의 서체뿐 아니라 풍류와 학문 또한 대단한 경지였음을 알 수 있었다.
집에 돌아 와서 일과를 마치고 검색을 하다 보니
스스로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국사와 세계사는 필살기(必殺技)라 자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삼 십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잠시 필요할 때 들쳐내 보는 일 외엔 소원하다 보니
우리의 역사가 조각지식으로 남아있을 뿐, 그 큰 흐름을 잊은 것 같아서...
올가을에는 우리의 역사를 다시 한번 꿰뚫어 읽어야겠다고 결심한다.
'겸재와 더불어 노니는 것'을 그날의 대주제로 택하여 시간을 넉넉히 잡고 가서
세 시간 가까이 겸재 정선과 우리 그림 속에서 유유자적할 수 있었다.
미리 자료를 찾아 훑어보고 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나. 아는 만큼 보이는 법...
내가 미리 검색해서 읽어본, 딱 그만큼만 보였을 뿐이다.
마침 10월 13일부터 '왜관 수도원'에서 보관하고 있던 미공개의 화첩이 공개된다 하고,
상설 전시하는 줄 알았던 이 인문 선생의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 또한 20일 부터 기획전시된다 하니
20일 이후 다시 올 것이다.
그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보이리라..
내려오는 길...오묘한 가을 하늘..
태풍의 기운이 조금 몰려와 바람이 세찼다.
예전보다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었다.
점심도 잠시 미룬 채 겸재 선생의 그림에 빠지다 보니 산책을 즐길 시간이 없어 아쉬웠다.
10월 중순 넘어 단풍이 각각의 색을 뽐낼 때 천천히 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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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유도원도 -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1447년(세종 29) 작.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 38.7×106.5cm.
일본 덴리[天理]대학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안평대군(安平大君)이 꿈에 도원에서 논 광경을 안견에게 말하여
그리게 한 것으로,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그 양식도 여러 가지 특색을 지니고 있다.
특징은 그림의 줄거리가 두루마리 그림의 통례와는 달리 왼편
하단부에서 오른편 상단부로 전개되고 있으며 왼편의 현실세계와
오른편의 도원세계가 대조를 이루고, 몇 개의 경관이 따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큰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 왼편의 현실세계는 정면에서 보고 그렸으나 오른편의 도원세계는
부감법(俯瞰法)을 구사하였다.
<< 부감법이란?>>
-투시도법의 종류로서 부감법(俯瞰法) 부감법은 3점 투시도법, 혹은 조감법으로 불리는 회화에서의 거리감의 표현방식을 말한다. 부감법은 회화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고 있고, 그만큼 효과적인 거리감의 표현방법이다.
대상의 좌우에 있는 두개의 소실점과 대상의 수직선을 기준으로 한 위, 또는 아래에 위치한 한 개의 소실점을 이용해 거리감을 표현하는 방법으로서, 투명판에 관찰하고자하는 대상의 한 꼭지점을 대고 관찰하는 경우이다. 일방 관찰자가 대상의 한 모서리의 귀퉁이를 보고 그림을 그리는 경우라 할 수 있다.
- 출처 : 한국어 위키백과
안평대군의 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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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글은 문화재청 대학생블로그 기자단의 김 윤지 기자가 올린 것..
일목요연하게 하도 잘 써서 이곳으로 모셔왔다.
안평대군 꿈(夢) 속 세상
<몽유도원도>
오는 9월부터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전시된다고 한다(장소: 국립중앙박물관). 몽유도원도는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자신이 꾼 꿈을 설명하여 당대 최고의 화가 안견으로 하여금 그려내게 한 것이다. 즉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 속 세상인 것이다. 그 옛날 안평대군이 꿈에서 보았던 장면을 우리도 볼 수 있다니, 긴 세월을 초월한 안평대군과의 정신적 만남이 몽유도원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하룻밤에 꾼 꿈을 화가로 하여금 그리게 하고, 문사들과 시를 지어넣다니, 낭만적이다.
안견 作 몽유도원도
시(詩) 서(書) 화(畵)의 만남 몽유도원도
위 그림이 바로 몽유도원도인데, 안평대군이 30세이던 1447년 4월 20일 그가 도원(桃源)을 노니는 꿈을 꾼 뒤
그 정경을 화가 안견에게 설명했고, 그대로 그리게 하여 3일 후 완성되었다고 한다.
왼편이 현실세계이고 오른편이 도원세계인데,
구도상으로는 부분적으로 독립된 경관을 그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인다.
더구나 현실세계와 달리 도원세계는 아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것과 같은 방법으로 그려냈다.
그림 뿐 아니라, 안평대군의 표제와 발문을 비롯해
신숙주, 박팽년, 성삼문 등 스물여명의 당대 최고 문사들의 찬시가 곁들여 있다.
저마다 친필로 쓰여져 있는데, 대체로 안평대군의 글씨체(송설체)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당시 유행했던 이 글씨체도 확인할 수 있다.
위 사진은 그림의 구성이 좀 더 잘 보이도록 색 대비 효과를 준 것이다.
표시된 부분이 바로 도원세계이다.
( 여러 문인의 친필 찬시) (안평대군의 발문과 표제)
왼쪽 사진에서 보이는 빼곡히 적혀 있는 글씨들이 바로 여러 문인의 친필 찬시이고,
오른쪽 사진에 맨 오른쪽에 휘갈긴 글씨로 夢游桃源圖(몽유도원도)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바로 안평대군의 것이다.
그리고 찬시와 발문, 표제 그 사이에는 화가 안견의 그림 즉 안평대군의 꿈속 세상이 펼쳐진다.
전체 구도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몽유도원도를 통해 세종대왕의 셋째아들 안평대군도 만나고 당대 최고의 화가 안견도 만나고
신숙주, 성삼문 등 교과서에서 보던 바로 그 사람들도 만나게 되는 것이다 !
조선 최고의 문예가 안평대군
세종의 셋째 아들로, 왕자라는 최고의 환경에서 어려서부터 시(詩), 서(書), 화(畵)등 고급문예에 심취할 수 있었다.
문예 활동에 전념하던 그는 세종이 죽은 후에 수양대군에 의해 유린된 단종을 지키고자
김종서, 황보인 등과 함께 수양대군(後 세조)에 맞서지만 단종1년 유배되어 36세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왕자라는 지위가 문예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최고의 지위였으나
동시에 정치적으로 전혀 무관할 수 없다는 필연성으로
결국 그의 문예 활동은 완전한 꽃을 피우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되어 버렸다.
그는 세종대 문예활동의 중심에 있었다.
중국 역대 서화를 널리 수장하여 당대를 대표하는 서화(書畵)수장가 였는데,
그는 이를 안견을 비롯한 화가들에게 제공하는 등 당대 화가를 후원하기도 했다.
글씨 학습을 위한 법서를 간행, 전파시키는 등 서화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그는 계유정난(수양대군→세조)의 화를 입었지만, 그의 글씨는 그 후에도 큰 변함없이 찬미되어,
성종을 비롯하여 조선 왕실의 서풍(書風)에 미친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실제로 성종의 글씨가 안평대군의 것과 닮아서,
중종대에는 성종 어필을 좋아한 중국 사신에게 줄 것을 안평대군의 글씨로 대체하고자 한 바 있어서
그의 글씨가 어필에 버금갈 정도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때 중종실록에 의하면
'성종어필은 결코 줄 수 없으며 민간에 필시 안평대군의 글씨가 많으리니 그것을 구해주라.' 한 기록이 있는데,
이로 보아 안평대군의 글씨가 거부감 없이 향유되고 있었음도 확인할 수 있다.
안평대군, 그의 공간 비해당
비해당은 안평대군의 여러 호(號)중 하나인데, 세종이 지어준 것이다.
그는 자신의 근거처를 비해당이라 이름 붙이고
그 곳에서 여러 진귀한 수목과 동물을 기르며 여러 문사들과 시회(詩會)를 자주 가졌다고 하는데,
안견 作 몽유도원도에 실은 자신의 발문과 표제, 교류했던 문사들의 시를 통해서도
그곳에서 이루어진 그의 문예 활동을 짐작할 수 있다.
위 사진이 바로 비해당이 있던 자리의 오늘날의 모습이다.
이 곳에 안평대군이 사용하던 정자인 무계정사가 있었다고 하는데,
가운데 바위에 새겨진 무계동(武溪洞)이라는 글씨가 바로 안평대군의 직접 쓴 것이라고 한다.
이 곳은 오늘날 서울 종로구 부암동 329-4번지 일대이다. 그 날의 비해당의 모습은 정말 온데 간데 없이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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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견 作 몽유도원도' 라고 적혀 있는 위 그림은 모사도(즉 가짜)이다.
아쉽게도 몽유도원도는 우리나라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지 않다.
어찌된 경로인지는 밝혀진 바 없으나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넘어갔다가 해방 전후 우리 나라에서 떠돈 적이 있으나
당시 300만원 정도의 가치를 갖고 있던 몽유도원도는
그만큼의 돈이 없다는 이유로 일본으로 넘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몽유도원도의 가치는
(금액을 매길 수 없을 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나 굳이 매기자면) 약 10억이 된다고 한다.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일본 덴리 대학에서 소장하고 있고, 우리는 오는 9월에 대여받아 전시를 시작한다.
9월이 되면 안평대군의 꿈(夢)과 안견의 솜씨와 그 세월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비해당(안평대군)은 서화를 사랑하여
누가 조그만 종이, 비단 조각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들으면
반드시 후한 값으로 샀으며
"난 이런 것을 좋아하는 성벽이 있는데 이것도 병입니다.
열심히 찾고 널리 찾기를 10여년 한 뒤에야 이만큼 얻었습니다.
아! 물건의 이루어지고 무너짐이 때가 있으며
모여지고 흩어짐에 운수가 있으니.
오늘의 이름이 다시 내일의 무너짐이 되고
그 모여짐과 흩어짐이 또
어쩔 수 없게 될는지를 어찌 알겠습니까?" 하였다.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 기자단 김 윤지님이 쓴 글을 옮겨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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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평대군(安平大君)-〈몽유도원도 夢遊桃源圖〉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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