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점프, 인생도 점프!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6시면 벌떡 일어나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는 나의 아들 상윤이는
명지고 3 학년에 재학 중인 자폐성 장애 3급의 장애인이다.
아이가 35 개월 되었을 때 소아정신과에서 발달장애로 진단을 받은 후
지금처럼 ‘장애아동복지지원법’ 같은 법적 기반이나 치료지원이 전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당시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치료와 교육에 온힘을 기울인 결과, 혼자서 출퇴근을 하고 기본적 신변처리를 하며 기사보조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4 학년 때
중대부설사회복지관의 부모교육에서 처음으로 ‘장애인의 사회 전환과 독립생활’에 대한 강의를 듣고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한글과 수셈을 가르치고 학교생활에 적응시키며 자폐인들에게 부족한 사회성을 키우는 개별적 대면 교육을 시키기에 급급해서
언젠가 아이가 스무 살이 되고 더 세월이 가면 노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조차 못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이후 ‘자립’을 목표로 잡고 필요한 생활기술들을 꾸준히 가르쳐 왔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더 이상의 통합교육은 무의미했고,
상윤이에게 가능한 직업을 찾아보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기 시작했으며
고교 졸업 이후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는 대학과 기관을 찾아다녔다.
완전히 자비를 들여 아이와 함께 요리학원을 어렵사리 수배해서 일 년간 다녀 보기도 했으나
전문적인 조리사 과정을 하기에는 아이의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고등학교 특수학급에서 보낸 3 년 동안 상윤이는 ‘전환 교육’에 매우 관심이 많은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제과제빵과 비누 만들기, 원예와 목공 등의 직업교육의 맛볼 수 있었으며,
‘고용공단’에 구직등록을 하고 직업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근처 ‘서대문 장애인 복지관’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기도 하고
서부 장애인 복지관에서 진행되는 ‘사회 전환 프로그램’인 ‘열린 교실’에 참여도 했지만
직업과 연계성은 찾기 힘들었고, 졸업 후 아들의 진로를 결정하는 일은 전문성과 정보가 부족한 부모에게 무척 힘든 종류였다.
더구나 생애주기에서 청년기 이후를 대비해야한다는 생각만 해도 어찌할 바를 몰라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고 3이 되어 아들과 함께 고용공단에 가서 직능평가를 받으며 평가의 종류와 기준을 보니
그동안 내가 그토록 알고 싶어 하던,
고용을 위해 아이가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과 부모와 함께 준비해야 할 목표가 될 구체적 항목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만약 초등학교나 중학교시절부터 장애의 정도와 심각성에 따라 내 아이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고
어떤 종류의 직업을 갖는 것까지는 가능하다는 ‘로드맵’을 제시받았다면
그간의 고통과 고생은 훨씬 줄어들지 않았나 싶은 생각에 아쉬움이 컸다.
현재 고 3에 집중된 평가 스케줄이나 직업체험의 기회들을 중학교부터 서서히 접할 수 있다면
장애당사자와 부모들이 불확실한 우리들의 미래를 위해 우왕좌왕하며 치르는 헛수고를 대폭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10년 통합 거점학교가 생기면서 양상은 조금씩 바뀌었다.
학교 교실 한구석에서 겨우 흉내를 내던 제과수업을 근사한 전문 설비가 갖추어진 거점학교에서 받을 수 있었고,
교육의 내용과 종류도 상당히 다양해졌다.
아이는 자신이 방과 후 거점학교로 가서 받는 교육이 자신의 미래와 직업에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는 듯 보였다.
고등학교 3 학년이 되자, 일 년 후면 아침마다 안심하고 어딘가 보낼 곳이 없어진다는 사실이 절박한 현실로 다가왔다.
고 3이 되면서 그동안 애타게 찾던 교육의 기회들을 꽤 많이 만나게 되었고,
나 역시 아들의 취업과 전환교육을 위한 본격적인 탐색을 시작했다.
장애인 취업박람회에도 참석해 봤지만, 고 3의 뇌전증(간질)을 동반한 자폐성 발달 장애인에게는 돌아올 자리가 거의 없었으며
대학의 자립학부와 복지관의 전환교육 프로그램조차 수준이 너무 높거나 낮아 내 아이가 설 땅은 아무데도 없는 듯 여겨졌다.
2011년 8월, ‘장애학생 구직역량강화 프로그램’의 신청서를 아이가 건네줄 때만 해도 내용을 잘 모른 채,
서울시 교육청과 한국장애인 고용공단 고용개발원에서 함께 진행한다는 사실만 믿고 신청을 했다.
9월 1일 성북특수교육 지원센터에서 ‘취업준비 프로그램’을 시작하기에 앞서 부모들과 함께 설명회에 참석했을 때
우선, 사업의 규모에 깜짝 놀랐다.
2010년 '국회 내 중증 지적 자폐성 장애인 고용창출 프로젝트'도 7명으로 시작했는데
서울 시내 27개 학교와 11개 도서관에 도합 72명의 학생을 ‘구직역량강화’ 하는 대규모 사업이라니,
마음속에 희망의 불씨가 생겼다.
사무행정 보조직, 기사보조와 도서관 사서 보조의 세 가지 직종을 두고 3일의 취업준비 프로그램이 끝난 후
각 학교에 배치를 받아 3 주간, 직무지도원의 지도하에 지원고용프로그램을 한 후,
학교 측과 고용계약을 체결이 되면 3 개월의 인턴쉽 단기채용을 한다는 계획이었다.
드디어 내 아이에게 취업의 기회가 왔다는 사실이 꿈만 같으면서도,
내가 거의 20 년에 거쳐 준비해 왔던 과정들이 과연 3일-3주-3개월의 단기에 속성으로 완성될 수 있을 까
하는 약간의 의구심은 들었다.
9월 19일, 드디어 2011‘장애학생 희망 일자리’ 발대식을 하고 각자 배정된 학교로 출발했다.
상윤이가 상암고등학교에서 기사보조의 인턴쉽을 하기 위해 출근하는 첫날,
평소에 집에서 일을 많이 가르치고 시켜왔지만 직장에서 제대로 기사보조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자폐인 고유의 융통성과 사회성 부족으로 인해 오해나 받지 않을지 걱정이 앞섰지만,
학교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첫 일자리를 경험하기에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인턴쉽을 시작하기 전 우려했던 바와 달리,
교무보조로 함께 배치된 민경이와 아들은 기대 이상으로 성실하고 열심히 일을 배우고 있다며 칭찬을 받았다.
고등학교 3 학년 일 학기까지만 해도 아침에 깨울 때마다 늑장을 부려 어미 속이 터지게 만들던 아들이
6시만 되면 두어 번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상암고에 출근해야 한다’며 서둘러 세수를 하고 밥을 먹는 것을 보면서
부모님과 우리 부부는 비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 한다.
아직 경제관념이 제대로 없는 아이가 자신의 급여가 들어오는 통장을 체크하고,
돈을 찾아 친구들에게 취업 턱을 내면서 조금은 아까워하는 기색을 보이고,
앞으로 많이 모아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사려고 계획을 세우는 것을 보며,
백 번의 책상머리 교육보다 한 번의 체험이 이렇게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버스에서 졸다 종점까지 가는 바람에 지각을 한 후 삼십 분의 거리를 걸어서 출퇴근을 하며 삼 주의 지원고용기간이 지난 뒤,
상암고 행정실에 가서 아들과 함께 고용계약을 하는 내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상윤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면서
말도 안통하고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아이에게 학교라는 제도가 과연 어떤 의미를 줄이지 의문스러웠지만,
아이가 매일 아침 강요하지 않아도 가방을 챙겨 일자리로 향하는 ‘일과성’을 몸에 익힌 것 하나만으로
학교생활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아 감사하게 된다.
3 개월의 인턴쉽이 시작되고 처음 일 주일 정도,
아이와 나는 바짝 긴장을 했지만, 차차 적응을 해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수능시험을 마치고 학사 일정이 끝난 지금, 아이는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기에
퇴근 후 한 시경 집에 돌아오면 하루의 남은 시간은 한없이 길다.
아이에게 집안일과 심부름을 시키거나 운동과 피아노 연습을 시키면서,
만약 아이가 고교 졸업 후 갈 곳이 없어 집에만 있게 된다면 그와 우리 가족의 삶이 얼마나 힘들어 질 지 상상만으로 막막하다.
다행히 상윤이는 자폐성 장애 중에서도 경증이라 시범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지만,
장애가 심한 아이들은 결국 부모의 몫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당장은 자리가 있어 복지관을 전전하다가 늙은 부모의 집으로 돌아올 장년의 중증발달장애인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려온다.
그들에게도 ‘장애학생 희망 일자리’ 1, 2기생들처럼 직업훈련과 체험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들의 인생에도 얼마나 많은 ‘점프의 기회’가 생길지 모른다.
대한민국 최초로 시도하는 대규모의 ‘구직역량강화’ 프로그램이 전국의 교육청으로 확산되어
학교마다 장애를 가진 고용인들이 나름대로 그들에게 주어진 일을 하며 지역사회의 일원이 되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우리네 장애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간절히 기다린다.
시범사업의 1기생으로써 72명의 장애학생들은 삼 개월의 인턴쉽이 끝난 후
정식 근로자로 전환하여 고용연계가 되기 위해 아직 험난한 산들을 넘어야 한다.
서울시 교육청과 장애인 고용공단 관계자들이
각 학교와 도서관으로 찾아다니며 고용을 부탁하고 계신 것을 이미 우리 부모들은 잘 알고 있다.
‘아이보다 하루 먼저 죽고 싶다’라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기 위해
비장애인 자녀들을 키우는 백배의 노력으로 스무 살까지 아이들을 키워온 우리들은 이제 노년을 향해 가고,
부모들 중 상당수가 장애를 갖고 있으며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실상이다.
실제로 취업을 한 장애인들의 상당수가 가정경제에 제법 큰 도움을 주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프로그램의 당사자학부모로써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찾다가 다섯 명의 부모가 모여 도서관에 배정된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
실무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가볍지 않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데리고 조곤조곤 일을 가르쳐 주시는 도서관 선생님들의 고충을 듣고,
장애자녀를 키운 엄마로써 조언을 해드리며 나는 다시 희망의 싹을 보았다.
비록 낯설고 성가시긴 하지만, 아이들의 성실함과 직업을 가졌다는 자부심을 높이 평가하시며
‘아주 천천히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그들에게 맞는 업무를 찾아내면 일자리 하나 만들기 정도는 가능할 거’란
남산도서관 과장님의 말씀에 내 아이의 일처럼 고마웠다.
처음 하는 일이라 시행착오는 있는 법이고, 아이들의 장애와 정도가 다양하다 보니
적은 인력과 예산으로 지원하기엔 지나치게 범위가 넓기도 하다.
더구나 인턴쉽에서 고용으로 점프하고, 육 개월이나 일 년 동안 보강교육을 받고 준비하여 다음 일자리,
즉 커리어 관점의 고용으로 또 다시 점프하기 위해서는
다원적이며 전폭적인 지원과 '장애인들에게 일자리가 꼭 필요한 이유‘에 대한 전반적 인식 개선 또한 필요하다.
지금으로서는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커리어 관점의 고용으로 연결되지 못 하여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다른 길을 기웃거려야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크다.
또한, 직종을 선택함에 있어 준비과정에서부터 개별적인 평가가 꼼꼼히 행해져 아이의 ‘적성’과 ‘취향’을 반영하지 못 한 점은 조금 아쉽다.
일자리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아이들 개인에게 맞지 않는 종류라면 고용으로 연결되기도 힘들고,
된다 해도 지속되기 힘들 것이 분명하다.
상윤이만 보더라도 활동적인 기사보조가 훨씬 잘 맞는데,
입을 다물고 조용히 일하는 도서관 일자리를 얻었다면 무척 힘들어 했을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개인별 IEP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중, 고등학교를 거쳐 사회전환과 직업선택에까지 활용하는 미국의 체계를 참고하는 방식을 하루 빨리 활성화시켰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자식사랑만으로 무조건 열성적으로 이곳저곳 다니며 이것저것 해가며 수많은 돈을 쓰고도 결국 방향을 잡지 못 하는 부모들에게
보다 구체적인 정보와 고용까지 제공할 수 있는 고용공단과의 연계지점을 확고하게 만들면 부모의 고충을 훨씬 덜게 될 것이다.
당사자(부모)와 학교(교육청),그리고 고용공단이 삼박자를 이루면 더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룰 것을 확신하며,
부디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 전원이 커리어 점프를 통하여 정식근로자로 고용되어
그들의 인생에도 커다란 점프를 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12월 15일, 국회도서관에서 발표할 '장애학생 구직강화프로그램' 참여 당사자 부모의 수기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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