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eminor.com/news/view.html?section=125&category=127&no=3600 2010년 계간지 '함께 웃는 날' 겨울호에서 옮겨 온 글입니다.
아들에게 보내는 어떤 아빠의 편지 |
네가 읽지 않을 편지를 너에게 쓴다,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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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에 앞서, ‘네가 읽지 않을’ 이라고 미리 단정한 것을 용서해 주기 바란다.
아마도 그게 이 아빠의 한계이지 싶다.) |
아들아. 나는 네 아버지 세대들이 대개 그렇듯, 우리 아버지(그러니까 너의 할아버지겠지)하고 그리 살갑게 지내지 못했다. 밥상머리에서도 묵묵히 밥만 먹었고, 어쩌다 나누는 대화도 “오셨어요?” “주무세요”정도가 다였다. 일상을 조곤조곤 얘기해 본 적도 없고, 고민을 털어놓아 본 적도 없었다. 손을 잡아 본 적도 없었고, 안아 본 적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대중탕에서 등을 밀어드린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아마 혼자 목욕탕에 갈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부터는 각자 따로 갔던 것 같다. 무뚝뚝하고 서먹한 관계였다. 철들고 나서, 어른이 되고 나서는 더욱 그러했다. 때로 다정하게 대화를 해보는 상상도 하긴 했다만, 새삼스럽게 그러는 건 너무 어색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가 태어나면 어렸을 때부터 대화를 많이 해야지, 같이 놀러도 많이 다녀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종일 같이 있어도 별로 할 말이 없는, 그런 사이는 되지 말아야지 했었다. ![]() ![]() ![]() 네가 태어났을 때 나는 많이 기뻤다. 아빠가 된다는 것은 기쁜 일이더구나. 강보에 싸인 너를 보면서 비로소 한 가정을 이룬다는 책임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무렵, 주변의 내 친구들도 대개는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들의 화제엔 아이의 일상이 자주 올랐다. 나도 너의 미소, 웃음, 몸무게, 심지어 배변 상태까지 자연스레 이야기할 수 있었다. ![]()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너는 다른 집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너는 옹알이를 하지 않고, 눈맞춤도 하지 않고,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하루 종일 소리를 질러댔다. 자폐라고 하더구나. 세 돌이 될 때 자폐 진단을 받고서 네 엄마는 며칠을 울었다. ![]() 나는 그저 황망하기만 했단다. 내가 모르는 세상 얘기 같았다. 뭐 어찌 되겠지, 그 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때 나는 아마 ‘잘 모르겠다’면서 현실 에서 슬쩍 비껴서고 싶었던 것 같다. ![]() 나는 너하고 다정한 대화, 신나는 놀이, 그런 것들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듬직한 아들놈과 같이 목욕을 하거나, 청년이 된 아들놈과 따끈한 정종을 마시는 꿈을 꾸지 못하게 되었고, 아들의 눈부신 성장 과정을 친구들과 수다 떨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알았지만, 처음엔 그리 깊게 절망하지 않았다. 그런데 절망하지 않은 이유는, 차마 미안한 말이지만,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내가 상황을 잘 몰랐거나 좀 무관심해서였다. ![]() 그때부터 나는 조금 비겁했던 것 같다. 자폐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이유로, 누구보다도 엄마가 잘 안다는 이유로, 그리고 엄마만이 잘 감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나는 너와의 일에서 슬쩍 빠지고 싶어 했던 것 같다. ![]() 네 엄마가 여기저기 너를 데리고 다니며 치료다 학습이다 할 때, 나는 과연 효과가 있기나 한 건지 의심스럽기도 하고, 그 바람에 가정이 가정이 아닌 듯 어수선해진 게싫기도 해서 짜증이 났었다. 시종일관 소리 지르고 저지르며 신경을 거스르는 너와, 파김치가 되어 대꾸조차 성의 없이 하는 네 엄마가 있는 가정, 그 곳으로 힘없이 귀가하는 나는 참 무기력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 내가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너무 없어서 나는 참 암담했었다. 황량한 벌판에 홀로 선 것 같았지. 너를 대하는 것에는 무슨 대단한 기술과 공부가 있어야만 하는것 같았다. 엄청난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것 같았고, 끝간데 없는 헌신적 사랑도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들이 내게는 부족한 듯싶었다. 네 엄마에게는 ‘엄마’ 라는 이름과 함께 자동으로 부여된 것 같았고. ![]() 네 엄마에게 너무 많은 것을 미룬 덕에 내 몸은 편했는지 모르지만, 너와 참 멀어 졌다는 생각이 든다. 너를 대하는 일에 서툰 나는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 지, 어떻게 가르쳐야 할 지 몰라서 속으로 엄청 쩔쩔 맸다. 그 당황스러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되도록 너와 네 엄마가 같이 있는 공간에서 피해 나오고 싶었던 것이다. ![]() 그래서 너와 같이 외출할 일이 생기면 나는 너무나 긴장해서 온 몸에 가시가 돋친 사람처럼 굴었다. 그 바람에 너에게 너무나 모질게 했구나. 두 눈을 부릅뜨고 윽박지르고, 귀찮다는 표정으로 너의 말문을 막았다. 때론 네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심한 말도 했다. 그러고 나면 너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그런 내 자신이 너무 못나보여서 자책과 울분이 섞여 엉망진창인 기분이 되곤 했다. 아직도 불쑥불쑥 그런 모습이 여전하니, 정말 못난 아빠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 ![]() ![]() 주변에서 너를 걱정하는 것도 싫었고, 너를 둔 나를 걱정해 주는 것은 더욱 더 싫었다. 걱정이 아니라 불쌍타 여기는 것 같았는데, 그게 아주 못 견딜 만큼 싫었다. 어차피 그들은 자기의 동정심, 그걸 확인하려는 것뿐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갖고 있는 착한 심성 한 조각, 그걸 확인하려는 것뿐이다, 그런 생각이 들어 가증스러웠다. 그 제물로 나의 불쌍한 처지가 이용되는 것 같아서 말할 수 없이 싫었다. ![]() 정녕 선한 심성이 있다면, 개별적인 나를, 내 아이를 불쌍하다 여기기 전에 장애가족이 불쌍한 사회가 되지 않도록 만드는 데 애를 썼어야 하는 게 아니냐. 입에 발린 걱정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예의상 입 발린 소리를 하는 게 싫었고, 나 없는 곳에서 내 뒤에서 혀를 끌끌 찰 것이 너무 싫었다. ![]() 네 엄마는 아예 ‘내 아이는 장애아이입니다’라고 나팔을 불고 다니는 사람처럼 보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떠들고, 모임에도 나가고 했다. 내가 말하지 않아서 모르던 내 주변의 사람들까지도 네 엄마를 만나고 나면 모두 다 알아버리게 되더구나. 나는 굳이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아서 말하지 않았던 것인데, 네 엄마를 만나고 나면 사람들은 내가 일부러 숨겼다고 생각하고는, 거기에 ‘오죽했으면 숨겼겠느냐’는 동정심까지 얹어서 나를 바라보더구나. ![]() 나는 지금도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장애아이의 아버지’로 나를 이해하는 게 싫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그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정도의 지각은 있는 사람이다. 다만 그런 일로 동정 받고 싶지 않고, 관심 받고 싶지 않을 뿐이다. ![]() ![]() ![]() 그래도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네가 어렸을 때는 하루하루가 전쟁터 같았다. 피곤하고 처절하고 불안했다. 학습의 효과인지, 원래 나이 들면서 달라지는 건지, 네가 예전처럼 소리 지르거나 나대는 일이 줄면서 온종일 쑥대밭 같던 집안이 제법 차분 해졌다. 너도 조금은 말귀를 알아듣고 눈치가 생기기도 하더구나. 귓속의 평화는 어느 정도 찾아온 것 같지만, 그렇다고 마음의 평온이 찾아오는 건 아니었다. ![]() 네가 커갈수록, 여전히 세상 사람들과 소통부재의 상태로 네가 커갈수록 마음 한편을 짓누르는 근심의 무게도 커간다. 네가 생물학적으로 어른 나이가 되어가는 게 두렵다. 사회도, 나도, 네 엄마도 성인이 된 너를 감당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채로 너만 훌쩍 커서 어른이 되어가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 온다. ![]() 의젓하고 어른스런 대화, 깊은 눈빛을 나눌 수 없는 채로 네가 어른이 되어 버리는 게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아비와 자식으로 만나 속 깊은 대화 한 번 못 해 보고, 서로의 가슴팍에 손 한번 못 얹어 보고, 서로의 마음속에 얼마만한 깊이로 새겨져 있는지 들여다보지 못해 보고 어른 대 어른이 되어버린 게 애석하다. 같이 누군가를 흉보지도, 같이 무언가를 눈치 채고 실컷 웃어보지도, 같이 무언가에 감동해서 울컥 해 보지도 못하고 너와 내가 그저 몸뚱이만 아비와 자식인 채로 살다가 갈 것 같아서 슬프다. ![]() 네가 수줍게 “아빠, 사랑해요”라든가, “나는 아빠가 제일 좋아”라든가 하는 말을 들려줄 때를 기다린 것은 아니지만, 네 마음속에, 또 내 마음 속에 ‘우리’가 나누는 사랑의 마음이 얼마간 들어 있기를 바라기는 했었다. 그리고 그게 가끔 얼핏 들여다 보이기를 바랐다. ![]() 가늠할 수 없는 너의 까만 눈 속을 들여다보며, 그냥 밑간 데 없이 한없이 내려가는 돌멩이처럼, 내 마음이 그렇게 바닥없는 곳으로 끝없이 내려가는 걸 본다. 혹시 언젠가는 내 마음이 네 마음 속 어딘가에 닿는 곳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러나 솔직하게는, 혹시나 네가 던져 준 돌멩이도 내 마음 속에 닿지 않고 끝없이 떨어지고만 있는지 모르겠어서 불안하다. ![]()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주변에서는 아이의 진학이 화제에 오르고,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자식의 독립이 화제에 오를 것이다. 아비, 어미와 같이 사회의 일원이 되어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아마도 그럴 때 보통 사람들의 화젯거리에 끼지 않을 다른 종류의 걱정을 하게 되겠지. 그리고 그들의 화젯거리에 염증을 내기도 할 것이다. ![]() 자식의 앞날에 기대를 걸고 지켜보는 일은 아마 흥미진진하고 즐거운 일일 게다. 모든 아빠들은 때론 팔불출같이, 나보다 더 잘 나갈 것 같은 자식의 싹수를 은근히 자랑도 해 볼 것이다. 나는 그런 것들이 못나고 미워 보인다. 내 자식이 설령 경쟁사회에서 잘 나갈 것이 분명한 자질이 보인다 해도 나는 절대로 그런 짓거리를 하지 않을 것이라 맹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는 사실이 내가 나를 좋게 봐줄 근거는 되지 못한다. ![]() ![]() ![]() 너에게 미안한 점이 또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또 말해 보자. 네가 있음으로 해서 이 사회의 한 단면에 대해 더 관심이 가고, 더 알게 된 것은 사실이다. 나는 아마 우리 사회가 장애를 포함한 소수자들에게 얼마나 몰염치한지, 얼마나 천박한 계급의식을 갖고 있는지에 관해 느끼는 게 남다를 것이다. 경쟁사회라는 게 얼마나 허구에 찬 위악인지, 얼마나 저열한 사회상인지 남보다 더 절절하게 느낄 것이다. ![]()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아직 장애아의 아버지로 나서지는 못하고 있다. 장애아동을 둔 아버지들 가운데는 자식에게 훌륭한 선생님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다정한 아빠, 친절한 친구, 좋은 형제 노릇까지도 하고, 나아가 세상의 모든 너를 위해서 연대하고 투쟁하는 일에 나선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길이 올바른 길이고 정의로운 길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 자리에 같이 서질 못하고 있으니, 여전히 나는 네게 못난 아비로 남아 있구나. 아직도 나는 되도록 장애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속에 남아 있나 보다. ![]() ![]() ![]() 너의 장애를 알고부터 지금까지 십 수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동안 나는 네게 깊이 다가가지도 못했고, 너를 내 머리가 아닌 내 가슴 속에 깊이 들여놓지도 못했다. 사랑하는 이는 그 존재 자체로 벅찬 기쁨과 행복감이 온몸을 휘감게 하는 법이다. 너를 보면서 그런 순간이 있었던가 되새기다 보니, 부끄럽고 민망해서 엉엉 울고 싶기조차 하다. 반짝이는 너를 보며, 매순간마다 기뻐하지 않았다니 이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이다. 나는 이토록 못난 아비이니 네게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다. ![]() 나는 안다. 내가 너를 자랑스러워 할 수 없다면, 나는 아직 못난 아빠다. 누구에게라도, 어떤 자리에서건 내가 너를 자랑스럽게 말하고, 너의 일상을 가지고 가볍게 농담할 수 있어야 비로소 나는 너에게 미안하지 않은 아빠가 될 것이다. ![]() 지금은 너의 성장이 불안하고, 너의 이십대, 너의 삼십대, 사십대, 오십대, 너의 노년이 아뜩하다. 그 생각이 문득 들면 잠이 달아난다. 왜 나는 지금의 너를, 온전한 지금의 존재 그대로의 모습 속에서 사랑을 찾고, 너의 문법에 맞는 대화를 하는, 올바른 길을 아직도 찾지 못했는지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 내가 여전히 너를 이해하지 못하고, 네 안에 내가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너의 세계 속에 내가 있고, 내 세계 속에 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을 머리로 알고 있지만 이제부터는 가슴으로도 알려고 노력해 보마. ![]() 네가 성년이 되면 깊은 밤, 집에서 조용한 영화를 보면서 맥주도 한 잔씩 해 보는 멋도 부려 보자꾸나. 종종걸음으로 고단했던 네 엄마가 가볍게 코골며 자도록 놔두고, 우리는 사나이끼리 말없이 오가는 온기를 나누며 맥주를 마시자. 아마도 나는 그때까지도 네게 미안했던 일, 사과해야 할 일, 참회해야 할 일만 가득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멋있는 순간을 지레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겠지? ![]() 내가 너의 아비가 되고, 네가 내 아들이 된 것에 무슨 이유가 있었겠느냐. 그저 어찌어찌 하다 보니 이런 인연의 끈이 맺어진 것이겠지. 솔직하게 말해서 어떻게 말을 건넬지, 어떻게 꼭 안아줄지, 어떻게 머리를 쓰다듬을지 잘 모르지만, 지금 사무치는 이 미안한 마음을 매 순간 잊지 않으려 노력하마. ![]() 아들아, 내 아들아. 너의 맑은 영혼이 이 못난 아비의 어리석음을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다오. 사랑을 뒤로 미루는 것처럼 어리석은 건 없으니 말이다. 아름다운 내 아들아. 참 아름다운 내 아들아. 진실로 네가 참 좋다. 사랑한다. ![]() 2011년 어느 추운 날에. 아빠가. ![]() ●●● 이 글은 한 아버지와의 인터뷰 내용을 편지 형식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 편집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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