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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이야기..about Daniel

상윤..피아노 레슨 다시 받다...

by 슈퍼맘빅토리아 2008. 2. 1.

 2007년 10월 9일..

이 경아선생님의 소개로 '서초여성회관'에서 '정 혜원'선생님을 만났다.

한양대학교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후

숙명여자 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악치료를 공부하고

현재 음악치료사로 활동하고 계신 분이다.

첫 만남부터 두 달 남짓한 시간동안 상윤은 아주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지금도 '오늘은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까'하는 기대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선생님과 나는 거울의 양면에서 아들을 지켜본다.

 

 2007년 12월부터 일주일에 두 번으로 치료시간을 늘였다.

조금이라도 자주 만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상윤은 자폐적인 사고로 경직된 그의 음악에 유연함과 융통성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정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나누었던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emotion(감정)은 motion(행동)을 지배하고,

 motion은 emotion을변화시킨다'라는 이론이 있었다.

즉, 상윤의 자폐성이 그의 연주로 하여금

감정적 고조가 없이 경직되고 기계적인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역으로 상윤의 연주에 감성과 유연함을 불어넣는다면

 아이의 정서에도 자폐성이 줄어들고 부드러워지며

아울러 생활과 행동도 변할 것이란 이론이었다.

일단, '연주에 유연함을 심어보자'를 목표로 삼고 치료를 시작했다.

 

나 역시 상윤의 음악에서 누구보다도 자폐성을 많이 인식했었고,

그것을 완화시키기 위해 음악을 도구로 삼으려는 여러가지 시도를 했었다.

상윤을 위한 독주악기로 '리코더'를 택한 것도

'나무', 혹은 '플라스틱'을 울려서 만들어지는 부드러운 소리와 리코더 음악 특유의 유려함 때문이었다.

말을 할 때 딱 딱 끊어지는 호흡과 세기를 조절하기 힘든 음성을

리코더 불기를 통하여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연주를 들려주고 흉내를 내게 해도 아이의 취향을 바꾸기는 힘들었다.

<<아이의 귀엔 분절음이 가장 편안하게 들렸기 때문이었을까...

    비트가 강하고 빠른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느리고 고요한 음악이 견디기 힘든 것이었을까 ...

    커다란 자신의 호흡을 줄이고 줄여서 길고 가늘게 뽑아내며

    아이는 과연 그 연주를 즐길 수 있었을까... >>

피아노를 칠 때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멜로디가 여러 형태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하농'을 부서져라 치는 것을 매우 즐겼다.

심지어 아이의 손끝에서 피아노줄이 세 개나 끊어져 나갈 정도였다.

그런 상윤에게 연주의 유연성을 어떻게 심을까..의문스럽기도 했다.

 

첫 치료시간...

상윤이 가진 음악적인 소양을 가늠해 보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테스트해 보는 선생님 앞에

아들은 자신이 가진 자폐성의 한계를 모두 펼쳐놓았다.

편중된 '어미의 시각'으로 본 아들의 이미지을 일체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상윤을 파악하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한 나는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좋아하는 피아노곡을 한 곡 연주해 줄 수 있냐는 선생님의 부탁에

선뜻 키보드 앞에 앉은 상윤은 곡 하나를 제대로 떠올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 피아노는 일단 다음으로 미루기로 해요...'

'그래요, 바닥부터 시작해 봅시다...'

 

선생님과 함께 드럼을 두드리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아이에게는 색다르고 다양한 리듬의 변화가 생기고,

제법 완만한 S라인이 그려지고,

자신있고 편안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다만...이 모든 것이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음악치료실 안에서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잔잔한 강의 수면 아래 숨겨져 흐르는 저류처럼,

   도저히 뚫을 수 없을 만큼 치밀한 자폐성의 껍질 아래

   십오 년을 넘어 쌓여 온 사랑과 가르침과 배움과 음악이 방울방울 맺혀

   제법 큰 물줄기가 되어 있다가,

   그를 알고 건드리는 손길을 만나서 마침내 스며나오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

 

12월 10일...

두 시간 넘게 걸려 집으로 오신 정선생님께 첫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지난 8월말 이 연희선생님께서 마지막 레슨을 하신 후 처음 받는 레슨이라

30 분이 지나자 상윤의 인내는 한계점에 다다른 듯했다.

자폐적인 행동들이 나오고, 언성이 약간 높아지고..

하지만 무시하고 한 시간 동안 레슨을 진행했다.

상윤이 선택한 곡으로 레슨을 했는데

영화 '피노키오'에 나오는 'When You Wish Upon A Star'이란 재즈곡이었다.

아래에 붙인 동영상은 그때 찍은 것으로 상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상윤에게 피아노를 가르칠 엄두도 못내었을 때

누군가가 이런 영상을 보여줬다면 상당히 용기를 얻었을 것 같은 생각에서,

자폐인들을 키우는 부모님이나 선생님들께 참고로 하시라고 올려본다.

** 아이에게 곡의 흐름을 몸으로 느끼게 하기 위해서

    등을 어루만지고 밀고 당기고 하는 선생님의 손길,

** 호흡을 느끼게 하기 위해 일부러 과장되게 숨을 쉬는 모습,

** 자폐적인 행동을 받아들이는 담담한 자세..

    등을 유심히 보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지금까지 세 번의 레슨을 받았을 따름인데도

아들의 연주는 제법 부드럽고 유려해져 있다.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에 손을 얹기 전에 크게 심호흡을 하고,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의식을 하며 연주를 시작한다.

양볼은 웃음을 머금어 볼록해져 있다.

 

 나는 상윤에게 말한다.

'상윤아, 네가 무언가 바라는 게 있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

 어떤 목소리로 말하니?

별님에게 네 소원을 간절히 빌 때 어떻게 부탁을 하니?

그런 목소리로 연주를 하렴...'

<< 만약에, 만약에.. 아들이 문자 그대로 이 말을 해석하지 못한다해도,

     이 속에 담긴 메시지를 그의 가슴으로 받아들임을 저는 알지요.

     왜냐하면 바로 그 목소리로 연주를 하려고 애쓰거든요...ㅎㅎ>>